#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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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당최 나지가 않았다.
인도에서도 크리스마스가 휴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인구의 80%가 힌두인 나라이다 보니까
늘상 한국에서 느끼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특별히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뭔가 업(Up)된 기분이었는데,
올해만큼은 아주 차분한 기분의 휴일이 될 것 같다.
오늘은 SP로드(SP Road)에 가려고 한다.
벵갈루루는 인도 IT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도시로,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공산품이 그렇지만 전자기기는 특히 시대와 대중의 욕망이
한껏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딜 가나 전자제품 보는 걸 참 좋아한다.
물론 그럴싸한 핑계로 나의 유아적 성향과 호기심을 포장할 뿐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버스를 타고 SP로드를 찾아가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과거 용산전자상가를 방불케 하는 밀집된 상가와 거리를 가득 메운 상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극심한 호객행위와 한국과 맞먹는 제품의 가격,
마치 싸움처럼 보일 정도로 치열한 세일즈의 현장까지-
이것이 인도의 또 다른 현주소이지 않은가.
넋을 잃고 제품들을 둘러보다가 소영을 살피니 사람들에 치여서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인도에 온 이후로, 어딜 가나 인기가 너무 많아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한다.
그녀를 구출하여 만트리 스퀘어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하루 만에 이곳의 시원한 냉방에 중독이 된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기로 한다.
‘Life of Pi’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이름으로 꽤나 유명한 영화였다.
주인공인 ‘파이’를 중심으로, 벵갈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묘한 여운을 주는 영화다.
종교를 넘는 생(Life)의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