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임스 Jun 02. 2016

J임스 군의 파시미나 모험기

10월 17일, 2013년의 글을 옮겨 쓰다.

작년(2012년)에 인도를 여행할 때 파시미나(Pashmina)를 알게 되었다.


'나는 물 건너온 물건' 이라는 분위기를 확실하게 풍기는 색감이며,

존 오셔(John O'Shea, 아일랜드 출신의 축구선수)스러운 멀티(Multi)함이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금년에 H투어와 함께 작업차 캄보디아에 다녀왔는데

아마도 마지막 날인가 사람들과 함께 나이트마켓에 들렀을 당시, 내 매의 눈(호구 아이)에 녀석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매의 눈과 함께 그간 굳어버린 뇌가 꽤나 데굴데굴 거렸더랬다.


얼마 전에 윤 원장('여행자의 삶' 시리즈에 등장하는 그분)과 함께 태국을 재방문했고

먹은 마음은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성미라,

결국에는 아시아 최대 사이즈라는 짜뚜짝 시장에서 꼬박 반나절을 바쳤다.

그렇게 찾아낸 물건들이 바로 태국산 파시미나다.


우리 아버지는 97년 가을, 사가정역 근처에서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금액을 투자하며 의류업을 시작하셨다.

나는 옷장사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에, IMF가 터졌다.


'거리에 나앉을 판' 이란 말을, 실감이 아니라 체험을 했고, 그 해 97년의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옛말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 라고 했는데,

부자는 아니었고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3개월밖에 못 간 듯하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정확히는 이 파시미나들을 찾아다니면서 옛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는 괜히 아버지가 원망만 스러웠다.

당시 나는 그렇게 어린 나이였지만, 사업을 하려면 PC방이 최적기라며 그렇게 떼를 썼었다.

버릇이 원래 없었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있자 나는 아버지를 말로 깠고, 아버지는 나를 그냥 (발로) 까셨다.


다시 2013년으로 돌아와 가을 문턱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나 떨어진 타지에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흥정에 흥정을 거듭하는 '보부상+장사꾼=사기꾼' 이 된 내 모습을 느끼며,

이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낚시는 손 맛이라고 했는데 그 '맛' 이란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버지가 IMF라는 불의의 일격을 맞기 전에 사실 우리 가게는 딱 1달 동안 그 '맛' 을 봤는데,

그게 엄청난 '맛' 이었다.


그래서 IMF임에도 불구하고 98년 내내 장사를 끌고 가다가, 99년엔 가난이 우리 집을 끌고 갔다.


은근히 이게 감정이 북받치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데,

돌아오면, 이번 여행에서 사실 파시미나를 떼왔다.

반(Half) 백장 정도.


장사보다는 모험이라는 느낌으로-


가까운 지인들만 어떻게 조금씩 팔았는데, 지금은 5장 정도만 빼고 다 팔린 상태다.

나도 놀랬다.


돈을 벌려고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순전히 심심한 일상에 '재미 삼아' 옵션을 하나 넣었던 건데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다.

사실, 몇십만 원 손해 볼 요량으로 그냥 사람들 만나서 조잘거릴 이야깃거리 하나 들고 온다고 생각했는데.


자칭 내 'Backer' (라고 쓰고 나는 'Banker' 라고 읽는다)라는 L군이 말하길,

'물건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산다' 라고 했다.

은근히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많은 물건이 안 팔리면 그의 발언을 인질로 삼아 L군한테 다 떠넘길 생각도 해봤다.


정말 감사한 일은,

이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허접한) 이야기꾼의 (두서없는) 여행기&모험담' 을 보듬어주는 이들이 꽤나 많다는 거다.

덕분에 실패를 각오한 모험이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전개와 함께 성공으로 끝이 난다.


여러 해를 지나면서 재미있는 일도, 심심한 일도, 성공도, 실패도 많지만, 돌아서서 느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서른이 넘어서자 수도 없이 찾아오는 '이 길이 맞는가' 혹은 '바르게 살고 있는가' 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하지만 이에 대한 마지노선은 언제나 사람이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한다면, 아직 나의 IMF는 오지 않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사람들에게 '천상 여행자'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면도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있다.

자신이 비치고 싶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함정은 사실 여행자가 여기저기 꽤나 많다는 점이다.

(커다란 의미에서는 모두가 여행자- 라고 생각하지만)

나보다도 멋들어진 (숱하게도 많은) 여행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하고 동시에 마음속의 피가 끓는다.

성숙해지는 과정 속에서도 이 부끄러운 투쟁심은 숨길 수 없나 보다.


좋은 여행자이고 싶다. 선한 여행자이고 싶고.

좋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선한 이야기꾼이고 싶고.


할 줄 아는 게 이뿐이라, 이것으로라도 책임을 다하고 싶다.

나의 이 생에서, 그리고 작지만 커다란 이 지구에서.



생각한 대로 살면 재미있다.

진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와 인식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