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임스 Nov 07. 2016

친구놈 전 상서

5월 28일, 2015년의 편지를 옮겨 쓰다.

G야,


금방이라도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세기말을 지나 2000년에 너를 처음 만나 여기까지 왔다.


반 전체가 1년 내내 짝을 바꾸는 와중에도,

너와 나만큼은 끝까지 문제아 군단이었던 1분단에서 용케 맨 뒷자리를 사수했지.


기인(병신이라고도 함) 같은 고추들이 넘쳐나는 남고(라고 부르는 우리 교도소)에서마저

'문과 3대 또라이'의 타이틀을 한 자리씩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우리의 비범한 우정을 보여준다.


그런 네가 이제 새로운 시작을 향해 떠났구나.

괜히 새벽에 못 일어나서 네 배웅을 못 해줬다가는 평생 욕을 얻어먹을 것 같아서,

정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ㅆㅅㄲ.(친구 G가 잘 쓰는 욕)


문득 2007년에 우리가 군대(너 때문에 공군에 갔다가 군 복무를 3개월 더 했다)(ㅆㅅㄲ)를 제대하고

오랜 우리들만의 숙원이었던 미국 대륙횡단을 계획했을 때가 생각난다.  


난데없이 버지니아테크 공대에서 네 이름을 묘하게 닮은 ㅆㅅㄲ가 이상한 짓을 하면서,

너의 미국(당시에는 존재했던) 비자는 면접관에게 웃으면서 능욕을 당하고 거절을 당했다.

고등학교 내내 서로의 수능점수를 깎아먹으며 (수업시간에) 세웠던 세계 정복의 원대한 꿈은

그렇게 시작부터 꺾이고 말았다만, 나는 아직도 그때 네가 나에게 건넨 말이 생생하다.


"너가 가라(하와이는 아니고 미국) 그래서 못다 한 우리의 꿈을 완성시켜줘."


결국 모든 건 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당시 돈으로)한 달 만에 300만 원을 쓰는

돈ㅈㄹ을 하러 가기 위한 어떤 그럴싸한 변명이라는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그때의 나는 네게 (정확히는 너의 대사에) 대단히 감동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우리의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이제는 문득 내 차례가 된 것 같다,  G야.


"너가 가라(나는 아무래도 가고 싶지 않은 중국) 그래서 못다 한(못 번) 우리의 꿈(돈)을 완성시켜줘."


시간이 흐르면 강물도 강산도 조금씩은 변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우정만은 그러고 싶지 않구나.


벌써부터 감성에 젖어 눈시울이 붉지만,

뭔가 네가 (벌어올) (돈을)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조금은 웃음이 나는구나.


친구여-

새로운 인생과 도전,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언제고 돌아오라.


그 자리에는 언제나 내가, 우리의 우정이 있을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악순이를 영원히 기억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