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2015년의 생각에 덧붙여 쓰다.
대가는 작은 것으로도 감동을 준다.
꽤나 근사한 사내를 만났다.
태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방콕의 한 집합소(와 가장 가까운 느낌의 게스트하우스)에 여느 날과 다름없이 퍼질러져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은 도미토리에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사람들과 어색함이 채 가시지 않은 즈음에,
만남부터 시종일관 싱글벙글한 얼굴만 보여주던 소녀는 내게 자전거 여행자가 왔다고 했다.
"자전거 여행자가 대수냐."
"한 둘도 아니고.."
퉁명스러운 대답에는 장기 여행자보다도 더 장기 여행하는 자에 대한 괜한 질투가 서렸을 터였다.
"깔끔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나는 괜히 까칠함이 났다.
자전거 여행자라는 그 사람보다 먼저 만난 것은 그의 자전거였다.
주인은 어디에 갔는지,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는 그의 자전거만 쿨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눈을 흘기며, 무심한 듯 자전거를 쳐다보았다.
뭔가 달랐다.
숱하게 만나던 여행자들의 자전거와는 사뭇 달랐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그냥 달랐다.
그러다 그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왔다.
한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면서.
잔뜩 곱슬한 머리는 꼭 그에게 가장 맞는 스타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묶여있었다.
티셔츠는 약간 넝마주이 같기도 했지만 꽤 멋스럽게 잘 어울렸고,
두 다리는 세계를 달리는 자의 다리 치고는 지나치게 겸손했지만 그래도 단단해 보였다.
꼭 그의 자전거와 닮았다.
뭔가 달랐다.
내 질투심이랄까, 괜한 여행자 부심으로 쌓은 결계도 상대의 분위기에 금세 감화되었다.
사람 사는 데는 인연이 있다.
쌓아가는 인연도 있지만,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도 알게 되는 인연이 있다.
아마 형과는 후자의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날은 곧 어두워지고 반나절이 함께 훌쩍 지났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환한 미소 그대로 (지금도) 형은 사람들에게 팔찌를 선물한다며,
도미토리에 올라와 오방실을 꼬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상대의 스케일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달랐다.
말로 하기가, 글로 써내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 느낌과 감정으로 형은 나에게 이내 좋은 형제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대가의 마음을 거치면 그건 무엇보다 큰 가치가 된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오롯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대가가 되고 싶다.
작은 것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