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2015년의 일기를 고쳐 쓰다.
새로 자리를 잡은 곳은 정말 기묘한 곳이다.
방콕으로 돌아와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이번 여행은 딱히 좋아하는 곳은 아니어도 카오산에서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므로,
그저 카오산이 질릴 때까지 한 번 있어보고 알아내 보겠노라고 여기로 돌아왔다.
익숙하던 싸구려 독방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만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에 분주하게 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과정 중에 무려 4천 원짜리 방이 2016년을 코 앞에 둔 지금까지도 카오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에어컨이 선풍기 바람처럼 나오는 방을 2만 원씩 받는 곳이
순진한 여행객들을 여전히 눈탱이 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4천 원짜리 방을 한 번 도전해보고자 하는 용기가 어디선가 스멀스멀 목덜미까지 올라올 무렵,
마지막에 들른 게스트하우스에 자그마한 옥탑방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인장은 한사코 그 방을 내주기를 꺼려했지만-
하얀 종잇장처럼 객실의 시트들이 잔뜩 널려져서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과
간헐적으로 위잉거리는 커다란 물탱크가 두 개,
나무판자 떼기로 대충 붙여놓고 하얀 페인트로 대충 시마이,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이상한 철제 서랍장 같은 것으로 외벽을 막아놓은 옥탑방이라니.
기어코 6층 옥상까지 기어올라서 두 눈으로 이 모든 풍경들을 확인한 나는
이미 가격의 메리트라던지 어떤 편의와 요소의 불합리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상하리만큼 끌려버렸다.
엘리베이터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6층을 다시 걸어 내려오는 동안에도
한참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1층 카운터에 도착하자마자 그 노력이 허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채 0.21초가 걸리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짐을 풀고 구닥다리 선풍기가 달랑 하나 놓인 널찍한 옥탑방 침대에 누우니,
발 밑으로 커다란 창문이, 그리고 그 너머로는 새파란 하늘과 두둥실한 구름이 몇 점 떠있다.
팔짱을 끼고 본격적으로 허세를 잡고 다리를 엑스로 교차시킨 후 다시금 아래를 내려보니,
마치 세상 위에 내가 떠 있는 듯했다.
활짝 열어 놓은 창문과 정면으로 평행하는 방문은 놀랄만치 강한 순풍을 이 방과 이 나에게 선사한다.
옥탑방에는 방이 사실 두 개가 있는데,
판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옆 방에는 '나'라는 워킹걸이 산다.
매일 밤 카오산의 밤거리를 방황하는 그녀에겐 내년이면 일곱 살이 되는 '피터'라는 아이가 있다.
첫날 인사치레로 페레로 로쉐의 초콜릿을 하나 주고 나서는,
매일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피터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서 전해주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는 아이의 어머니와 세면대를 옆에 두고 하루에 두세 마디 대화를 주고받는 그런 일상에 익숙해진다.
워킹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기에는 되려 숨김이 없이 언제나 활짝 열려있는 그녀의 방문과,
수줍어 보이지만 짧은 대화에도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동자,
매일 낮에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볼을 쓰다듬는 모습이 너무 뭐랄까,
인간적이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을 자고 일어나, 발아래에 하늘을 두고, 이를 닦으며 새로 알게 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유혹을 모르는 워킹걸과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옥상에서 내내 달궈진 파이프 덕에 온도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강제 온수 샤워를 하고,
뒷짐을 진 채로 일본인이 낸 빵집에 매일을 출근-
그렇게 아침이 지나면 빈 물통을 들고 쭐래쭐래 동네 30원짜리 정수기를 찾아 물을 담아오는,
아주 뭐랄까, 이것도 인간적이라면 인간적일까 하는 의문이 잔뜩 드는 일상을 살고 있다.
곧 2016년이 병신년이라는데,
뭔가 내게는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때보다 병신년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낮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평생을 살지 않을까 나란 인간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공자와 노자께서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지 궁금하다.
그게 또 하도 궁금해서, 곧 태국에 오시는 법륜스님을 뵙고 즉문즉설을 하기로 했다.
병신년부터 병신놈같은 질문을 하면,
또 어디 네이트판 같은 곳에서 회자가 될까 두렵기도 하고-
그러나 생김과 순리를 거부하면서까지 살 필요는 있을까 하니,
역시 언제나처럼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편안해진다.
그저 사랑하고 살고 싶다.
살아있음에, 항상 사랑으로 가득한 생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