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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Feb 06. 2017

상처, 어느새 사라진

Writing Photo, 10

코흘리개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소위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를 가져본 역사가 없다. 그래서 “너는 누구랑 제일 친해?”라는 물음에는 늘 말문이 막혔다. 물론 만나면 즐겁고 나의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매해 하나둘 정도는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았다. 나이가 먹고,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레 데면데면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 저 아이에게는 나보다 더 소중한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야’하는.


언제부터, 왜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꽤나 오래전부터 뿌리를 단단히 내려 쉽사리 뽑히지 않는 종류의 무언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는데, 이년 남짓한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붙어 다녔는데도 끝끝내 회의감을 떨쳐버리지 못했었다.


한 멤버가 이사를 가고 몇 달 뒤 동네에서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마주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 집 전화번호를 몰랐거나 아니면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앞뒤 사정 상관 않고 달려가 녀석들을 놀래 줬어도 됐을 텐데. 나는 둘이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고, 그저 조용히 발길을 돌릴 뿐이었다. 그래, 내가 옳았구나, 하며.


이후로는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생기고, 가끔씩은 유별나게 마음이 가는 친구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독했다. 아마 그들도 다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이니 더 이상은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벽이랄까, 함께 시간을 보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런 것들을.


이제 와 돌아보면 다 내 탓이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인정할 만큼 성숙하지 못 했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그래서 난 특히 가까운 이들에게 유독 싸가지 없고 모질게 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무리 나쁘게 대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듯도 싶다. 먼저 다가가지는 못하면서, 포용력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전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 <Lars and the real girl>을 보는데, 한 대사가 심장에 와서 박혔다.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물려오는 통증 탓에 타인과의 물리적인 접촉은 견디지 못하는 주인공 라스가 의사에게 하는 말. “무지 추워서 발이 꽁꽁 얼었는데, 따뜻한데 가면 녹으면서 아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온기를 되찾기 위해선 응당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 어쩌면 나도 그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아른거리는 불빛에 가닿을 수 있는데, 손잡이에 서린 한기가 무서워 문을 열지 못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라는 상태에 익숙해졌던 것도, 그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도 방어기제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언제나 지지하고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갈팡질팡 문 앞을 서성이는 방랑자를 선뜻 환영해 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라스가 마을 이웃들의 도움 덕분에 비앙카를 자신의 의지로 떠나보낼 수 있었듯이 말이다.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10. @J임스

그 해 겨울, 나는 홍대를 걸었다. 매일 아침 10시면 집을 나섰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걸었다. 사진을 담는다는 것은, 시간을 담는다는 것. 그 계절의 매일을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담았다. 매일을 담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다. 풍경과 시선이 금세 익숙함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걸었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열에 아홉은 검정색 구스-다운(Goose-Down) 외투를 무심하게 걸치고, 열에 여섯은 파자마와 구분이 힘든 바지를 입은 채로. 배운 게 있다면, 익숙함 속에서도 호기심을 유지하는 끈기랄까. 일명 '10 am, Hongdae'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렇게 내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선물한 형님께 감사하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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