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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Jan 04. 2017

괜찮은 여름

Writing Photo, 9

매미 울음소리가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너를 부둥켜안고 있는 힘껏 긍정의 언어들을 토해냈었다. 마치 방언이 터진 사람처럼, 주문을 외듯 괜찮아괜찮아괜찮아괜찮아 쉼 없이 읊조렸다. 넌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을까? 당시 너의 심정보다 내 말이 너에게 어떻게 들렸을지가 더 궁금한 것을 보면, 그 순간 내 발화의 대상이 나 자신이었음이 비로소 분명해진다. 알고 있었다. 네가 어떻든 일단 난 좀 괜찮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어서 눈물을 그치고 나 괜찮다 끄덕여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가 괜찮을 수 있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새하얀 건물들로 둘러싸인 정원에서의 벚꽃놀이는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붐비는 것이 질색이었던 우리는 언제나 달빛 조명 아래에서만 봄의 여왕을 영접해왔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새벽이슬이 드문드문 반짝이며 하품을 자극할 무렵부터 해가 고개를 꾸벅꾸벅하다 서서히 스러져 잠이 들 때까지 원없이 꽃놀이를 즐겼다.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피할 수 있었던 것들이 사라져 생겨난 자유와, 어찌 피할 방법을 찾아볼 새도 없이 주어진 부자유 간의 절묘한 접점.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벤자민 버튼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가 데이시와 동년배로서 사랑할 수 있었던 그 짧은 나날들을. 과연 그들은 불안했을까? 서로의 시곗바늘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서러웠을까? 후, 그래도 당신들 그 누구도 모래시계는 아니었잖아.


계절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해는 눈에 띄게 길어졌고, 네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더 자세히 보였다. 그리고, 온 우주를 가득 채우던 매미의 울음. 누구보다 우렁찬, 곧 사라질. 빛나는 젊음의 벤자민을 마주한 노년의 데이시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차라리 내가 데이시였다면. 스스로의 늙어감을 창피해하며 너로부터 등을 돌릴 한 줌의 명분이라도 주어진 상태였다면. 서로를 마주하는 일이 공포스러웠을 쪽은 오히려 너였을 것이다. 벤자민과 달리 네 생의 시계는 리와인드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러했듯 스러져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뙤약볕 아래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스르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뇌까리며 버스에 올랐을 때,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벚꽃 동산에서 반바지에 반팔, 플립플롭 차림으로 휠체어를 끌던 노인. 더위를 많이 타는 양반인가, 갸우뚱했었는데 오늘은 또 가을 차림이다.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에 밀려 엉겁결에 그 앞에 섰는데 그가 내게 슬쩍 눈인사를 건넸다. 목례로 답하고 멀뚱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즈음, 그가 중얼거렸다. 들릴 듯 말 듯.


나는 늘 한 계절 빠른 옷을 입지. 웬 줄 아나? 다음 계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야. 지금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화한 모습을, 머지않아 당신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기 때문이야. 반지를 약지가 아닌 중지에 낀 것도 비슷해. 가능한 한 오래, 곁에 있었으면 하니까. 내 고향엔 미신이 있거든.


홀로 여름을 지나온 그와 만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매미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다.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9. @J임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건조하긴 해도 특유의 따스함이 있었다. LA 다운타운(Downtown)으로 향하는 버스 안, 노인은 볕이 드는 쪽 자리에 골라 앉았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지긋이 차장 바깥을 응시했다. 이따금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그는 여전히 추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잠시 정신이 들 참이면 반지를 만지작 또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금세 다시 차장 밖으로 멀리 시선을 내었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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