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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Mar 21. 2017

우리 동네에 신이 산다

Writing Photo, 12

우리 동네에는 신이 산다. 이런 말을 하면 어른들은 백이면 백 꼬맹이의 헛소리로 취급하면서도 “상상력이 참 뛰어나구나”하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들 것을 알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감이랄까 촉이랄까, 녀석들에겐 그런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그나마 좀 낫다고 생각했던 옆집 치카도 마찬가지였다. 기대한 내가 바보다, 하여튼 둔감한 자식들. 그래도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 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치밀하고도 은밀한 첩보 활동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식당에서 마을 아저씨들의 대화를 엿듣는 건 그리 쉽지 않다) 그는 약 15년 전에 여기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개 한 마리와 단둘이서 살고 있단다. 개의 이름은 ‘베로’다. 나랑도 꽤 친하다. 곁을 지나갈 때마다 궁디를 팡팡 쳐주곤 하는데, 혀를 쏙 내밀고 축 처져 있다가도 일어나 꼬리를 흔드는 게 무지 귀엽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인간으로 치면 거의 100살 가까이 되었다고 하던데,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잠깐 이야기가 샜다. 여하튼, 그는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뭘 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끔 커다란 솥에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달달 볶는데 냄새가 낯설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 양반인 건지, 심심해서 그러는 건지 늘 손에는 신문을 쥐고 있다. 때때로 안경을 고쳐 쓰기도 하고, 땅이 꺼질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저울. 척 보기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초록색 저울을 매일매일 한참을 들여다본다. 별거 아닌 평범한 모습 같지만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해적이었던 모양이다. 저 멀리 불어오는 바람에서 소금의 맛이 느껴지면 마음이 들뜨고, 잠들기 전에는 꼭 삼촌이 선물해 준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또 하나, 미지의 세계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탐험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타고난 모험가의 기질. 내가 여태껏 깨지 못한 도장은 오직 한 군데, 그의 가게 안이다. 어린아이의 발자국이 새겨진 전례가 없다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굳이 따지자면 전동(童)미답이겠지만 어쨌든, 내 ‘졸리 로저’를 휘날릴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온 것은 당연지사다.


눈 질끈 감고 적을 향해 일단 돌진하고 보는 해적은 아마추어다. 머리를 써야 한다, 머리를. 그래서 난 그가 저울에 정신이 팔린 틈을 노리기로 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포복 자세로 살금살금 기어 고지에 다다를라 치면 번번이 베로가 훼방을 놓았다.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리 타일러 봐도 별무소용. 녀석은 나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다. 수면제를 훔쳐 베로의 밥에 몰래 넣어 볼까도 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혹시나 영영 못 깨어나면… 분명 슬프겠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도저히 안되겠으면 직접 찾아가 당당하게 요구할 작정이다. 어쩌면 아직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딱히 수다스러운 타입은 아닌 듯하지만,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걸 본 적은 없다. 의외로 말이 잘 통할는지도?


아 참, 그 영감이 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렸느냐고? 그건 정말 우연이었지. 커다란 보름달이 뜬 밤에 심부름을 다녀오고 있었는데, 어? 잠깐만. 베로다. 여긴 어쩐 일이지? 베로야!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12. @J임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조드푸르(Jodhpur)에서 김종욱을 찾고 있었다. 조드푸르는 블루 시티(Blue City)라고도 하는데, 구() 시가지의 많은 집들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브라만(Brahmins)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몇 날 며칠을 파아란 집집으로 가득한 골목을  거닐었다. 그러다 블루 시티와는 전혀 무관할 듯한 인상과 색상의 묘한 가게를 만났다.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한참을 가게 앞에 서있었지만 주인장은 웬일인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주인의 개(犬)도 미동도 않고 잠만 잤다. 그러기를 한 오 분여,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임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면 이들의 평화를 깨트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고, 그제야 주인장은 비스듬히 걸친 안경 너머로 사진가를 힐끗 보더니 가벼운 미소로 응답했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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