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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un 09. 2017

오늘도 먼지가 쌓이네

Writing Photo, 19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시간의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사실이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는가라는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차원과는 별개로, 나라는 인간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는 옛 달력의 일부분들. 그것이 천진한 유년이든 질풍노도의 사춘기든, 아니면 무어라 특정할 수 없이 밋밋하거나 심지어 추악하고 고통스럽기까지하지만 결국엔 귀소의 종착역이 되어버리는 나날들. 우리는 광활한 시간축 위에 얼기설기 지어진 이 조그마한 셋방에 세 들어, 평생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후미진, 세월의 때가 묻은 골목을 여행하는 일에 탐닉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원리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무한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녹아있을 것이고, 그러니 그곳이 무수히 많은 이들의 심연의 배경임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희미하게 남아있는 놀이터의 낙서, 담장에 새겨진 새까만 얼룩, 덜 마른 시멘트에 찍혀 화석처럼 굳은 동네 똥개의 발자국. 이토록 사소한 단면들에 틈입해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풍경들. 비록 내 것이 아닐지라도, 실재하지 않을지라도.


여행자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현재라는 실존이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의 속 편한 신선놀음 따위 괘념치 않겠다는 듯이 억척스럽게 가재도구들을 꺼내 보인다. 그들의 물끄럼한 응시에 괜히 뜨끔, 흠칫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야속하다 느끼기도 한다. 감히 내 환상을 깨다니! 그럴싸한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이마저도 이방인의 알량한 특권이라면 특권일 테다. 죄책감 없이 있는 힘껏 시공을 박제하고 타자화할 수 있다는 점.


세상 모든 로스트 킹덤에 오늘도 먼지가 내려앉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그것들을 바지런히 훔쳐내고 있다. 여행은 대개,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고서는 눈치채기 어려운 그 부단한 몸짓 사이사이를 그저 유유히 횡단하는 일에 불과하다. 이 본연적인 무위함과 직면한 이들만이 그나마의 품격을 지닌 손님이 될 수 있다. 내가 아직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 초대장을 건네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여행 그게 뭐라고, 하는 내 입버릇은 그래서, 자꾸만 뒤를 흘끗거리는 교실 앞자리의 외톨이의 얼굴과 똑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어.
불청객이라도 좋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괜찮아.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19. @J임스

내게 골목을 찍는 일은 확실히 일종의 관음(觀淫)과도 같다. 낯선 골목에서 카메라를 들었다가도 누군가 나를 알아채면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린다. 타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누구도 그런 나를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다. 이방인이 아니라 일부이고 싶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풍경이건만 그렇게라도 관계하고 싶다. 딱히 허락한 이도 없거니와, 진중하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거늘, 혼자서 그렇게 욕망하는 것을 보면 중증(重症)의 병(病)이 분명하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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