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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May 24. 2017

그의 목소리에서는 비행운의 냄새가 난다

Writing Photo, 18

황금향을 찾아 떠날 것이라는 말을 종종 입에 올리는 그였다. 특히 얼큰하게 술에 취한 날이면 밀짚모자 해적단으로부터 당장 항해에 합류하라는 통지서라도 받은 것 마냥, 여리여리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제스처를 곁들이며 바다를 노래하곤 했다. 지켜보던 나는 덩달아 신이 나서 엇박으로 또 정박으로 그의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조그마한 체구에서 어찌 그리 열정적인 몸짓과 말짓이 나오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과 베토벤이라도 악보에 기입하지 못할 기괴한 음정이었지만 그래서 더 신이 났다. 마치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것만 같은, 그가 꿈꾸는 엘도라도의 그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게다.


그가 자취를 감춘 어느 새벽녘을 기억한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곤히 잠들어있던 나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어 깨웠다. 하늘이 누런 까닭이 해가 뜨려는 참인지 지려는 모양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몽사몽인 나에게 그는 말했다. 때가 왔노라고. 영문도 모른 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나의 머리칼을 슬쩍 훑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커다랗게 보였더랬다.


이상하게 말똥말똥해진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들을 좇기를 얼마간, 저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창 밖에는 내가 좋아했던 익숙한 풍경. 반짝이는 바다와 해송이 우거진 언덕,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화물열차. 이토록 기차가 크게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는 배 대신 기차를 탄 건가 아니면 배를 타기 위해 기차에 오른 걸까.


아직도 이상하다 여겨지는 것은, 그 누구도 그의 부재를 의식하거나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초부터 그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저잣거리 뜬소문처럼, 한여름의 비행운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나만이라도 구름의 꼬리를 꽉 붙잡고 있겠다는 다짐도 역시, 아스라해지다 결국 사라져버렸다.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그후로 꽤나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어릴 적 모아두었던 구슬들을 찾으려 다락방을 뒤지던 중, 낡고 해진 모습이 되려 생경하던 아이보리색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 저녁. 먼지를 뒤집어쓴 이유도 잊고 무언가에 홀린 듯 리와인드와 플레이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지지직 지지직, 어딘가 정겨운 구석이 있는 소음과 함께 흘러나오던 그의 독백. 이름도 얼굴도 모두 가물가물한 그였지만, 살얼음같이 위태로운 두께와 양털보다 부드러운, 그러니까 정말로 독특했던 그의 목소리만큼은 분명 낯이 익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일이 어색한 탓인지 자꾸만 고음으로 저음으로 종잡을 길 없는 불협화음을 내는 그의 음성이 참으로 내가 알던 그 다워서, 눈물이 났다. 땅거미가 지고 칠흑의 카펫이 다 깔릴 때까지 나는 그것을 듣고 또 들었다.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18. @J임스

대개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하곤 했다. 해가 가는 방향으로. 태양은 느릿해 보여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때 즈음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저만치 달아난다. 저 멀리서 짐짓 미안한지 잠깐이나마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석양은 찰나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시광선 중에 파장이 제일 긴 녀석이 살아남아 붉은빛을 낸다고 한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찰나의 석양에는 묘한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역시 사진가로서, 확인하지 못한 순간과 이야기에 집착하며 조용히 셔터를 누를 뿐이다.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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