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Photo, 20
너는 알까? 무더웠던 지난 여름밤, 네가 폭죽에 불을 붙이던 바로 그 순간 의뭉스럽던 모든 것들이 선명해졌다는 사실을. 마치 폭풍우가 휩쓸고 간 다음 날의 아침마냥 먹구름이 걷히고, 비로소 햇살이 해수면 위를 반짝였다는 사실을. 수마가 손톱자국을 참 많이도 남겨 놓았음을, 그 상처들이 쉽사리 아물기는 어려운 성질의 것들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말이야, 처음엔 그 비바람을 몰고 온 사람이 너였다고 믿었어. 왜 아닌 밤중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나 원망도 하고 화도 내보고, 가끔은 믿지도 않는 신에게 애걸복걸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게 아니더라고. 하루와 하루를 흘려보내면서 곰곰 돌아보니 결국 이 사태의 용의자는 나였음을 알게 됐어. 다른 누구도 아니었어. 포세이돈은 바로 나, 였던 거야.
우습지. 이런 생각들을 애처로울만큼 자그마한 폭죽이 있는 힘껏 명멸하다 완전히 산화하는 그 짧은 동안에 다 해버렸다는 게. 마음에 소나기가 왔다 갔노라 표현하면 괜찮으려나?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가랑비 아래에서 제법 시간을 보냈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고 보니 불꽃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쏴-
가끔씩 궁금해지기도 해. 너의 하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곳의 날씨는 어떨지 말이야. 매미의 울음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쨍쨍할까? 아님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동작만으로 이마에 이슬이 맺힐 듯이 축축할까? 폐허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지금, 어디선가 새싹은 돋아나고 있을까?
아무쪼록 너라는 마을 구석구석에 초록이 가득하기를 바라. 그늘마저 에메랄드빛을 머금고 있는 원령공주의 고향처럼. 녹음이 우거진 숲을 만날 때면 늘 초롱초롱 두 눈을 반짝이던 너였으니까. 혹시 또 파란 비가 내리더라도 금세 노란 햇볕이 그 위를 덮어 녹색을 칠해 주기를. 너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선선한 미풍을 만끽하며 네가 사랑하는 동물의 배를 원없이 쓰다듬기를, 바라.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내가 아마 일곱 살 무렵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해. 무슨 연유에서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꽤나 더웠던 칠월의 어느 날 아빠와 둘이서 바닷가를 향해 걷고 있었어. 손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발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는 거야.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더니 번개 대신 오색찬란한 별들이 산개하고 있더라? 해변에서 큰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거야. 아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멈추고 벌러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
너와의 만남도 어쩌면 나에겐 이와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공간에서 맞닥뜨린, 넋을 빼놓는 압도적이고 환상적인 무언가. 최근에 알게 된 한 시인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한 몸이라고 말을 하더라. 정확히는, 슬프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거라고 했었지. 끄덕 끄덕. 대충은 알겠다. 그래서 그저 끄덕, 끄덕.
형형색색의 별들이 자취를 감추자 아빠는 엉덩이를 한 번 툭, 털고 다시 가던 길을 갔어. 돌이켜보니 저만치 앞서 걷던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어른스럽다’ 느꼈던 것 같아. 그리고 이제 얼추 내가 그때 그의 나이가 되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미숙한 인간이지만, 어른인 ‘척’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모르지. 아빠도 우는 얼굴을 감추려고 그리 서둘렀던 것인지도. 뭐, 어쨌든.
Writing. by 승재
밤이 되자 콜로안 빌리지(Vila de Coloane)는 관광객들이 대부분 떠나고 한적한 마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치이익- 하고 연신 불을 붙이는 소리가 나길래, 골목에서 벗어나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도 말도 없이 연신 폭죽에 불을 붙였다. 마치 무슨 의식인 것 마냥 묵묵히 하나를 태우면 또 하나를 집어 들고 하는 식이었다. 더 다가가면 그녀의 식을 해칠 것 같아 그저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어둠 속의 이방인을 끝내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느릿한 걸음으로 일행과 함께 또 다른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Photo. by 임스
함께 서로 쓰.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