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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06. 2017

투명한 응시

Writing Photo, 21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술집을 가득 메운 저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서로 주고받은 말들과 발산한 기운, 정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집중해서 지켜보면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이따금 길모퉁이에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무엇이 저리도 즐거울까, 또 무엇이 그토록 절절할까. 방관자는 용서치 않겠다는 듯, 배설된 감정들이 땅거미처럼 몰려와 삽시간에 나를 덮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무섭기만 했지,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술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내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격렬하고 치열했다. ‘취한 김에’라는 추임새로 운을 떼며 늘어놓는 날것들이 너무 비려 가끔은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다. 내가 어떻게든 꾸역꾸역 견디려 용쓰다 금세 탈진해 주체하기 힘든 졸음에 휘청거릴 때도 다른 이들은 외려 기어를 더 높이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탁자에 머리를 쾅, 쾅 찧을 따름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비위들, 대단한 체력들.


조금은 변태적이라 여겨지는 건, 한창 왁자지껄한 술자리에는 적응을 못했지만 모두가 떠난 빈터를 혼자 남아 둘러보는 일에는 제법 흥미가 동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 내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보다 폭풍이 휩쓸고 간 흔적들에 더 눈길이 가는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타인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흘러 넘기고 그것들을 재료 삼아 나만의 성을 축조해야만 성이 풀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 채 항상 흘러간 일들을 곱씹고 홀로 상상의 바다를 유영하는 나의 오랜 습관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여전했다. 인생의 절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보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말하자면 관조의 자세로 삶을 곁눈질하는 조연에게 훨씬 마음이 갔다. 저 인물은 어떤 생을 살아왔을까, 그의 눈빛에서 불현듯 흘러 나왔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공허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녹아있을까. 뭐 이런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일이 좋았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라고 가끔은 우쭐해하며 여태껏 잘 지내왔다. 그렇게 믿었었는데, 언제부턴가 묘하게 내면에서 무언가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명들이 들려왔다. ‘이건 아니지 않아?’, ‘이제 그만 솔직해지시지?’. ‘그냥 부딪칠 용기가 없는 것 아냐?’, ‘네가 얼마나 못난 놈인지 들킬까 봐서 그러는 거지?’, ‘왜, 또 도망치게?’


Writing Photo 22에서 계속됩니다.


Writing. by 승재


Writing Photo, 21. @J임스

일상의 스냅(Snap)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작업의 이력이 더해질수록 장비에 대한 갈망도 깊어진다. 원하는 답(Answers)을 찾기 전까지는 근원적으로 계속 물음표(Questions)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내게 장비에 대한 욕망과 고민의 간극 사이에는, 정확하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번뇌(煩惱)가 있었다. 어렴풋이 답이 정리되고 나서, 아니 답을 정한 후부터는 내가 예술이 됐다. I am Art, no more or less.


Photo. by 임스 


승재가 쓰고,

임스가 담다.


함께 서로 쓰.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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