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Photo, 22
*본 글은 Writing Photo 2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언젠가 직장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은근히 호감을 품고 있던 상대였던 터라, 자못 진지한 태도로 잰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실패라는 것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대체로 그냥저냥 잘 풀려왔어요.” 그러자 그녀는 양손으로 포개고 있던 커피잔을 수초 간 응시하더니 이런 대답을 돌려주었다. “실패를 해보지 않았다기보다는 실패가 찾아올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는 거니까.”
초등학생 시절 의기양양하게 방학일기를 삼행시로 써서 제출했는데 “숙제가 장난이야?”하는 일갈과 함께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던 날이 떠올랐다. 잔뜩 움츠러든 나는 우물쭈물하다 얼른 주제를 넘겨 버렸다. 여파는 꽤나 오래갔다.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로 나를 가장하려 했는데, 어설픈 포장지에 감춰져 있던 ‘도전 자체를 안 했다’는 진실을 내 목덜미를 쥐고 면전에 들이민 격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성가신 울림들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휘젓는데 불현듯 하나의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실패에 도전해보자. 불나방처럼 무턱대고 무언가에 투신하고 산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을 통해서 실패에 도달해보자. <케빈에 대하여>와 같은 영화처럼 실패의 서사를 디자인해보자. 에바와 케빈은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작품은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듯, 나도 정교하게 의도된 실패를 맛본다면 뜻밖의 수확을 거둘 수 있으리라. 대단한 발상이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대체 정교한 실패란 무엇이란 말인가. 평범한 넘어짐에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갑자기 예술성을 가미한 추락을 시도하려 하니 응당 막막할밖에. 그러니 우선 내 상상의 범위 내에서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무대는 술자리. 생면부지의 사람들 틈에 들어가 실컷 취하고 놀면서 친구가 되자. 그리고 그들로부터 다시 버림받아보자. OMR 답안지에 문제 당 점 하나씩만 찍고 수능 빵점을 노린다는 각오로 신중하게.
결전의 날. 내 생에 유치원 졸업식 이후로 가장 멋지게 차려입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길을 나섰다. 평일이고 주말이고를 가리지 않고 선남선녀들로 북적거리는 바(Bar)로 향했다. 여전히 그곳은 야밤에도 아지랑이가 보일 만큼 리비도로 들끓고 있었다. 명백히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그룹에 집중하는 이들. 과연 저기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동네 꼬마들의 주의를 끄는 풍선 마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부유하다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자, 이제 실패할 시간이다.
Writing Photo 23에서 계속됩니다.
Writing. by 승재
사진에 찰나의 순간보다는 공간을 담고 싶을 때가 있다. 공간을 채운 요소들이 무엇이든, 그것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있을 때. 느지막한 저녁 어느 골목의 바(Bar)에서도 종종 마찬가지. 취기가 거하게 오른 사진가의 눈이 아니라 마음에 차오르는 사진이 있다. 걸리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결과에만 집착하면서 생의 아름다움을 놓치기에는 지금이 주는 이 기분이 너무 짜릿하다.
Photo. by 임스
함께 서로 쓰.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