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Photo, 23
*본 글은 Writing Photo 2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그 유명한 첫 문장. 무더웠던 어느 여름, 동네 헌책방에서 처음으로 저 문장을 마주했을 땐 온몸이 찌릿하는 기분이었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멍하니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살피던 사람들을 삽시간에 집어삼키는 순백의 세상. 그 풍경을 상상하니 입에서 푸른 입김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뛰었던 터라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사정없이 땀이 흐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설국의 주인공이 느꼈던 것이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때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던 날이다. 열아홉의 여름, 홀로 KTX를 타고 도착한 서울역.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저 깊숙이 내려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도대체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던 아래로, 아래로.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인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겨우겨우 전철에 몸을 욱여넣고는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해냈었다.
대도시를 동경해왔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대도시 속에 숨어 살고 싶었다. 일본의 이름 모를 해변 마을에서의 삶을 꿈꿨던 적도 있지만 인적이 드문 시골이 외려 더 피곤할 것 같았다. 시골 인심 판타지가 현실이라면 분명 이것저것 외지인인 나를 챙겨주느라 귀찮게 굴 테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매일 좁은 공간에서 같은 이들에게 저 녀석은 무얼 하는지 관찰 당해야 할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내가 원한 것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곳, 원할 때 언제든지 혼자일 수 있는 곳이었으니 결론은 대도시뿐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회의감을 떨쳐버리려 “시청에서 초록색 라인으로 갈아타면 금방이야”라는 친구의 전언을 되새김질했다. 노선도를 뚫어져라 응시하다 가까스로 환승에 성공한 뒤 자리에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기를 한참,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폭설을 감당하던 야트막한 지붕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눈 폭포를 만들어내는 모습처럼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져 깨어났는데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황홀경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한강과의 그 강렬했던 첫 만남이 외로운 서울 생활을 버티게 해주었다. 서울은 한동안 내게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지만 그 잠깐의 광휘가 대단한 위안이었던 거다. 덕분에 어둡고 축축하고 우중충한 순환선 같은 삶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토록 눈부신 시간이 찾아오겠거니 막연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언젠가 밑동만 남은 나무의 나이테를 가만히 들여다본 일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무한에 가까운 나날을 살다 간 나무가 세월을 버텨낸 흔적이었다. 그 무늬들은 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기를 반복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아, 이 나무도 길고 긴 어둠을 견디고 난 후에야 찰나의 섬광을 껴안았겠구나. 그렇게 한 뼘 또 한 뼘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 나간 것이겠구나.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쯤일까.
Writing Photo 24에서 계속됩니다.
Writing. by 승재
한강을 좋아한다. 도시의 젖줄이라고 구태여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큰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외국인 친구한테 서울의 감상을 물어본 적이 있다. "Grey city."라는 아주 심플한 답이 돌아왔다. 회색의 도시. 아마 그 가운데 바로 한강이 있을 듯하다. 낮에는 이분법적으로 도시를 양극화시키고,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물을 거울 삼아 도시 전체를 하나의 일렁이는 빛으로 녹여낸다. 그 사이를, 서로의 간격이 너무 떨어져 외롭지 않도록 브릿지(Bridge)가 연결한다. 아련하게 한강 그리고 여느 다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흐르는 강물 위로 가만히 미동도 없는 회색의 다리가 괜히 애처롭게 아름답기만 하다.
Photo. by 임스
함께 서로 쓰.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