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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Dec 26. 2018

모든 관계가 인연(因緣)인 것은 아니다

당신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함을 표하며-

지난 9월, 한창 네팔을 여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후배 J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펜으로 그린 듯한 익숙한 얼굴의 그림. 익숙하다기보다는 정확하게 내가 아는 사진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인식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법이나 화풍이랄 것은 없었고 선 역시도 다소 불분명하거나 덧댐이 많았기 때문에 취미활동이라고 하기에도 그 단계가 시작에 매우 가까울 법한 정도의 그림이었다.


J는 기실 후배라고 부르기에도 다소 애매한 사이인데, 정확히는 내가 지냈던 회사에서 운영했던 활동 프로그램의 첫 멤버(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였다. 팀장님- 하고, 어 그래 J야- 하고 부르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도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후배라고 부르기에도 마땅함으로, 불편함 없이(나만) 일단 후배로 칭한다.


J는 내가 뽑았다. 아, 물론 팀원들과 함께 뽑았지만 당시의 직위와 나의 권력남용(갑질)을 감안하면 이 역시 그대로 그렇게 뽑았다고 해도 무방할 듯(나만) 싶다. 머리를 수 일, 몇 주간 싸매고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으로 최적의 결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인원을 선별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것을 동기와 이유로 나는 면접의 전 과정에 참여하며 지원자들을 만났다. 물론 팀의 모든 인력과 타 팀의 수장도 함께 동석하기를 권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회사였음을 감안한다면 나름 신선하고 적극적인 접근법이었다.


모든 지원자가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음에도 우리(나만 아님)는 숙고해서 매력과 실력이 밸런스를 이루는 사람들을 위주로 선택을 좁혀나갔다. 업무 외 시간임에도 팀원들을 강제하여 스타벅스로 연행하고, 마지막까지 최종안의 전원적 동의(All Pass)를 받기 위해 애썼다. 모지리에 요구사항만 많은 팀장(본인)을 만난 죄로 고생한 J 대리님, S 디자이너님, D 콘텐츠 담당자님께는 지금에도 여전히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있다.


결과적으로 짜인 구성을 돌아보면 모두가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준수한 인재들이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한 두 자리를 두고 치열한 수와 자리싸움이 한 시간여 동안 반복되었는데, 그 마지막을 확정한 키(Key)는 무엇이었을까.


늘, 언제나와 그렇듯, 나는 그것을 사람(人)에서 찾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땅한 구성요소인가. 일적 소임(所任) 외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심적 소임을 보이고 또 지속할 수 있을까.


인(因)과 연(緣)이라는 것은 의존적 관계다. 아무리 인이 좋다고 한들, 연이 좋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이 만나는 일을 인연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서로 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최상으로 친다.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인과 연을 하나의 인연으로 잇기 위한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된다. 물론 이 마음은 선함과 사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구적인 시각에서 보면 'Give & Take'라고 할 수 있을까? 주고 받고. 하지만 이 것을 일종의 주고 받는 행위 자체, 혹은 거래의 관점에서 보면 괜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거부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마음'과 '감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그러나 말뿐인 마음은 얼마나 공허한가?


다시, 인연이 있으면 거기에는 과(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열매가 건강하고 바르게 열리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뿐으로는 어렵다. 우리는 실질적인 노력,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만 한다.


인연도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가 인연인 것은 아니다. 인연이라는 과실(果實)은 마음은 언급하기조차 창피할 정도로 당연한 기본이고, 그 외의 물질(시간, 에너지)에서 나온다. 우리는 관계에서 공정거래의 합당함을 인정하고 순응할 수 있어야 한다.


철없던 대학생 시절에 바쁜 척을 하며 '커피 한 잔'이라는 가벼운 인사로 지나던 나에게, 꼭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어 쥐어주며 '다음에 말고 지금'이라며 온화하게 타이르던 선배의 말씀이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해진다. 대학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경해마지 않은 선배가 보여주는 아우라(Aura)는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취향이 다르듯이 모두가 추구하고자 하는 관계적 정의와 방향도 다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네가 나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 그 마음에 깊이 감사하며 이 인연(因緣)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고맙다, 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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