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2015년의 일기를 옮겨 쓰다.
다시 여행길에 오르다. 배낭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공항까지 굳이 배웅을 나와 준 형님께서는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며 '많이 내려놓고 오라'면서 미소를 짓는다. 서른이 넘은 아우도 역시 형이 보기엔 여전히 어린가 보다.
비행이 이제는 체력적으로 좀 고되다. 몇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걸어본다.
승무원 한 분께서 기내식을 서비스하다가 내게 (먹다 남은) 카레를 쏟았다. 포근한 미소로 달래주려고 노력했지만, 황급히 빨아다 주겠다며 건네받은 셔츠의 라벨을 언뜻 보고는 얼굴이 더 사색이 된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저 옷일 뿐인걸요."
그녀에게서 거듭되는 사과를 정중히 사양하고 대신 커피를 얻어마셨다. 커피는 잔을 넘칠 정도로 찰랑거렸다.
자카르타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환승 편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다시 한 시간 그리고 반 시간 정도를 더 지체하였다. 어렵게 도착한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동남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블루버드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시내로 이동했다.
정체구간을 지나자 쌩쌩 달리는 차들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빌딩들이 매우 놀라울 정도다.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느낌이다. Y와는 약속한 '아노말리' 커피숍에서 조우했다. 그녀의 밝은 모습을 보니 괜히 안심도 되고 참 잘하고 있구나- 싶었다.
인도네시아까지 오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구해서 타고, Y에게 10만 원짜리 저녁식사를 얻어먹고서는, 250만 원짜리 월세집으로 들어왔다. Y는 내가 잠시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간만의 비행에 몸이 놀랐는지 비행기에서도 얼마 자지 못했는데도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Y의 집은 거실뿐만 아니라 모든 방이 통유리 창으로 이루어져 자카르타의 야경이 새벽까지도 근사하게 눈에 들어오는 한편, 그 풍경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는데, 밤새 꺼질 줄 모르던 휘황한 불빛의 고층건물들 사이로는 허름한 판자촌이 빼곡했다. 지난밤에 Y가 빈부격차가 아주 심한 곳이라고 일러는 주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거기에 Y가 출근하며 청소부 아주머니의 한 달 월급으로 식탁 위에 올려놓은 60만 루피아(약 6만 원)는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불편한 마음과 감정적 사치도 잠시, 여행자는 여행을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이 곳 자카르타에는 지하철이 없는 대신 기차 같은 지상철이 있어 역 방향으로 일단 무작정 걸어보았다. 빌딩 위에서 내려본 도시와 바닥에서 걷는 도시의 느낌은 또 확연하게 달랐다.
첫날 셔터를 누를 마음이 크게 없어져 대신 목적과 이유 없이 도시를 반나절 정도 방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일에 지친 Y가 하루를 물었다.
"글쎄. 조금 어려웠나? 낯설고."
Y는 그런 나를 보며 애정과 씁쓸함이 묘하게 교차하는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