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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an 10. 2019

망설임과 나아감의 사이에서

9월 12일, 2015년의 일기를 옮겨 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라바야행 티켓을 예매했다.


아무래도 매일 전쟁 같은 일을 수행하는 Y가, 괜히 여행자 친구 때문에 집에서의 휴식이 온전한 것 같지가 않아서 예정과는 다르게 최대한 빨리 길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궁핍한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꼭 아침엔 같이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요리라도 해서 먹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쉬는 날인가 싶었더니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Y는 영수증과 서류를 식탁 위에 한참 늘어놓고 안경을 고쳐 썼다.


"넌 어서 나가서 좀 구경하고 와. 사진도 많이 찍고."

"나 그냥 수라바야 쪽으로 가서 화산 좀 보고 오려고. 아직도 활화산이라며, 거기."


그녀가 안경 너머로 눈을 살짝 치켜뜨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한 거야? 언제?"

"내일."


그녀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과 딱밤을 때리고 싶어 하는 표정의 딱 중간 정도를 표현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이구. 일찍 들어와. 같이 저녁 먹게."

"알았다!"


집을 나서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29퍼센트, 가벼운 마음이 69퍼센트, 싱숭한 마음이 2퍼센트 정도로 뒤엉켰으나 이내 가장 큰 마음을 돛삼아 나아가기로 하였다. 어제 꽤나 많이 걸었던 관계로 집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도시의 중심이자 상징인 모나스(독립기념탑)로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살갑게 말을 걸던 기사는 '잔돈이 없어요' 신공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찡그림은 얼굴이 아닌 마음에 담아두고, 가볍게 '뜨리마 까시'(인니어: 고맙습니다) 초식으로 받아내었다. 사소한 일에 다툼을 해서 무엇하리-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 서있는 광장의 기념탑을 잠시 감상하고는 발걸음을 곧바로 모스크로 옮겼다. 이 곳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 바로 옆에는 성당이 있어 괜히 묘한 느낌을 줬다. 종교가 없는 이방인은 그저 마음이 방향 하는대로 걸었고, 양쪽 어디에도 굳이 마음을 더 두지는 않았다. 다만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믿음(신앙)을 관찰하는 일은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그들처럼 신을 보지는 못하지만, 대신 가까이서 인간을 본다.


길에서 방황하며 마주친 현지인들의 표정이 대체로 어둡다고 느꼈다. 착각일까? Y는 이 곳이 최근까지 독재가 이루어진 국가라고 알려주었다. 빈땅 맥주를 처음으로 마셨다. 그리고는 Y를 위해 재떨이를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에두른 이야기들로 서로의 아쉬움을 피했다. 알 수 없는 미안함이 그녀에게 있었고, 그녀 역시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순간도 소소한 안주거리가 되겠지. 침대에 몸을 누이니 설레이는 기분이면서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겹쳐졌다.


다음 날 아침, Y는 피곤할 텐데도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토스트와 간단한 아침을 차려주었다. 정이 넘치는 녀석. 틱틱대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마음이 선한 것에 반해 꼭 친구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기억이 났다.


배웅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나라는 놈은 아마도 계속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역을 맡기 위해 태어났을까- 하고 자조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Y에게 꼭 갚고 싶은 마음과 성의를 간직한 채로.


Jakarta, Indonesia, 2015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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