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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an 19. 2019

10-Year Challenge

뜬금포 기억 재소환

10년을 돌아보니 예나 지금이나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똑같다. 발전이 없는 건가? 하며 추억을 들춰본다.

세계 평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멋진 (자뻑) 청춘은 09년에 대책 없이 오사카로 프리허그(Free Hug)를 나섰다. 신라면과 짜파게티 각 1박스를 내고 친구 집에 얹혀서 한 달을 살았다. 사나이는 약속을 지킨다- 는 지금 생각해봐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낸 참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집에서 베프(Best Friends) 둘이 잘도 살았다. 쿨내가 진동하는 초대장을 집 문 밖에 붙여놨지만 기대하던 (아름다운) 메시지는 오지 않았고, 대신 옆집 주민의 민원이 들어왔다. 가까운 일본인 친구가 대신 사과를 했다. 어글리 코리안의 원조 격이랄까.

친구는 낮밤으로 일을 가고, 나는 대체로 낮에만 피켓을 들고 시내로 나갔다. 한 달 동안 열 명을 채 안아주지 못했지만. 계절이 한 겨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역시나 도저히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다. 세계 평화 덕후의 오기 같은 것이었을까.

밤에는 소에몬초의 유흥가를 괜히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물론 소득이랄 것이 1이라도 있었겠냐만은 그냥 쏘다니고 기웃거리는 것이 좋았다. 그땐 그랬다.

머리가 좀 더 단정했다. 아니 단정했다기보다는, 시네루를 자연스럽게 만든 머리 모양새가 유효했다. 뭐, 그땐 그랬다. 언젠가부터 장발이 되고 나서부터 이성에게 받는 득표수는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장발이다.

늘상 친구를 좋아했다. 개중에는 좀 더 특별하게 좋아하는 친구들이 꼭 있었고. 물론 그건 지금도 역시 그렇다. 아, 09년엔 나름 인싸였다. 그전엔 더 했고. 이른바 핵인싸의 시조 격이랄까. 진짜다.

희대의 명품인 아이폰 3GS가 그 해의 말 즈음에나 나왔기 때문에, 여행은 여전히 종이 책자가 필요했다. 지도 역시 마찬가지. 갈수록 너덜 해지는 거대한 종이 지도를 몇 번이나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날로그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사진은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대부분이 기록이었다. 그러나 아카이브(Archive)를 꺼내보면 지금보다도 더 순수하고 날 것의 감정 표현이 있기도 하다. 대부분이 완벽하게 의식하지 못하던 호기심의 일부였지만 서툴러도 거짓이 없었다. 아니, 거짓을 부릴 만큼의 기교가 없었다고 함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유행이라고 하니 일부러 찾고 찾아 10년 전 사진들과 기억들을 소환해보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꼭 같이 여행을 하고 꼭 같이 사진을 찍는다. 발전이 없는 건가? 다시 갸우뚱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10년 전에 멀쩡한 직장을 팽개치고, 친구 놈을 찾아, 어설픈 프리허그 피켓 하나 들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의 그 마음에 과연 얼마만큼의 전략적인 마음이 있었겠는가 싶다. 발전적- 이라는 건설적 가치 추구에 몰두할 만큼 영민하지 못했다.

뭔가 좀 더 오기에 가까웠다. 약속도 지켜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살겠다고 허풍치던 것도 어떻게든 맞춰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친구들과 같이 사원에 갔다. 각자의 소원을 적어 사람들의 소원 사이에 같이 걸어두었다. 그때의 마음이 가장 잘 남아있는 사진 같다. 세계 평화의 신봉자는 날림 글씨지만 나름 정성껏 이렇게 썼다.

"언제까지고 꿈꾸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10년이 지나 서른이 훌쩍 넘은 그는 여전히 그대로의 꿈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아마 또 다른 10년 뒤에도 발전보다는 고집과 오기와 더 잘 어울릴 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도 하다.

물론 밥이나 잘 벌어먹고 살았으면. 그래야 또 지난 일도 추억한다.


#10yearchallenge

#youthgonewild


#atravelerslife


10-Year Challenge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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