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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an 20. 2019

브로모 화산 여행기

9월 14일, 2015년의 일기를 옮겨 쓰다.

브로모 화산에 가기 위해서는 프로볼링고라는 마을을 거쳐서 가야 한다.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나 수단들을 일부러 마다하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만 이동하려고 하니, 여간 빡빡하고 고된 일이 아니었다.


로컬 버스에서는 쉴 새 없이 한껏 뽕짝(?)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행사장에서나 쓸 법한 스피커가 버스의 어디에 숨어있는지 좀처럼 잠에 들기도 어려웠다. 체구가 그리 큰 편이 아닌데도 내가 자리에 앉으니 무릎이 앞좌석에 닿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지 몇 줄을 더 집어넣는 특색이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버스도, 밴도, 항공기도.


여하튼 그렇게 시작된 고행은 이어졌고, 간간히 악사들이 버스에 올라타 귀청이 떠나가라 노래를 질렀다. 데시벨은 비슷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악기와 함께 내는 소리는 그럭저럭 들을만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 여덟 시간을 달렸을까, 버스가 드디어 프로볼링고에 도착했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과 적막뿐인 터미널이 나를 당혹시켰다. 여기서 화산마을까지 또 2시간을 달려야 하는 미니버스가 이미 끊긴 터였다. 현지인들조차 갈 길을 떠나고 나만 덩그러니 남겨지고 나니 당혹감을 넘어서 위기감을 느꼈다. 이럴 땐 빠르게 결정할수록 유리하다는 본능에 이끌려 터미널 앞에서부터 보이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사정을 해본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한 청년에게 천 원 정도 되는 돈을 쥐어주니 인근의 작은 여행사에 나를 데려다줬다. 급하게 문을 두드리니 다행히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사정을 설명하고 몇 번의 흥정을 거쳐 7만 원 정도로 화산은 물론, 당장의 숙소와 족자(카르타)행 버스까지 올-인원으로 책임을 맡기기로 했다. 


몇 번이나 또 묻고, 재차 확인한 후에야 싫증 내는 기색이 없이 계속 자신만만한 미소로 나를 대하는 이 직원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는 악수가 끝나자마자 직접 바로 숙소로 안내해주었고, 약속한 대로 꼭 새벽 두 시에 나를 다시 데리러 왔다.


프랑스 커플과 폴란드 여성, 나까지 4인으로 구성된 오늘의 화산 원정대. 밴은 엄청난 주행속도로 밤길을 달렸고 멀미를 느낄 즈음 하니 어느새 화산마을의 입구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다시 한 시간여를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입구에선 지역민들이 말을 탈 것을 권하며 호객하고 있었다. 허나 이런 근사한 곳에서의 트레킹이라니! 걷는 것을 마다할쏘냐-


캄캄한 새벽부터 풀리지 않은 관절들을 가동하느라 조금 애를 먹었지만 가빠진 숨에 이내 몸도 차츰 적응을 했다. 무엇보다 칠흑 같은 어둠의 정적 속에서 홀홀히 빛나고 있는 무한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길은 그냥 걷다가 쓰러져도 좋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사실 별빛을 빼면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의 산행이었는데, 일행 모두가 나를 빼고는 사전에 준비를 했는지 이마에 하나씩 랜턴을 쓰고 있었다. 덕분에 후미에서 편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뷰포인트에 도착해서 반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마침내 해가 떠올랐다. 빛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부터 차츰 우리에게 돌진하며 마을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그럴수록 화산과 마을, 협곡을 따라 형성된 안개가,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우주의 별천지와 함께 환상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시간을 자꾸만 몇 분만이라도 반복 재생하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잔뜩 생겨났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것을 알기에,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 더욱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집중하기로 한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니 차는 우리를 다시 싣고 빠르게 산을 질주했다. 이번에는 화산 분화구까지의 트레킹을 위해 다시 한 시간을 걷는다. 화산에 가까워질수록 발은 자꾸만 사막 모래 같은 화산재에 푹푹 빠지고,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이질감은 커져만 간다.


힘겹게 정상에 서니 마그마가 끓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유황냄새도 매캐하다. 한동안 말을 잃고, 이 지구가 들려주는 경이로운 음악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여행에서 만난 광경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신비한 광경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화산을 내려와서는 운전수, 지역의 마부들과 한데 섞여 국수를 먹고는 밴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사에 잔금을 지불하고 샤워를 마치니 또 정확하게 약속했던 12시에 족자행 셔틀버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지도에서는 분명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거리였건만, 버스는 나를 다시 열 시간 동안 싣고 족자로 날랐다. 강행군이 계속됨에도 몸이 꽤 잘 버텨주고 있다.


아마도 일출에서 만난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서 그런 것일지도.


Mount Bromo, Indonesia, 2015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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