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형제 by 아우님
1_ "개 또라이~"를 반복하여 부르던 묵(Mook)은 자신의 안방을 내어주고 본인은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다. 소녀의 호의에 형은 첫날부터 냉방병을 얻었다.
2_ 카오산에서의 드레드는 약 3시간 정도가 걸렸고, 형은 뙤약볕 아래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맥용 한글(HWP)로 보고서를 썼다.
3_ 3일 만에도 형의 배낭은 꽤 홀쭉해졌다. 동생의 배낭은 치약과 샴푸가 각각 10g 정도가 줄었을 뿐.
4_ 후아힌까지의 기차는 연착을 거듭하여 8시간 반이 걸렸다. 참고로 방콕-후아인 간의 거리는 서울-천안아산역보다 조금 더 멀다.
5_ 후아힌에서는 형이 렌탈한 바이크의 키를 잃어버렸다. 벌금으로 1,500바트를 지출하다. 누군가 두씻 리조트의 모래사장에서 길쭉한 열쇠를 찾았으면 그게 바로 오토바이 키입니다, 여러분.
6_ 형과 함께 있을 때는 신기하게도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조금씩 딜레이가 되었다. 해를 부르는 아우, 연착을 부르는 형.
7_ 꼬 따오 쯤에서는 형이 감출 수 없는 썬번(Sunburn)으로 숙소 밖을 감히 나서지 못했다.
8_꼬 팡안에서는 매핫 비치에서 머무르고, 파티가 열리는 핫린으로는 둘 다 바이크를 빌려서 달렸다. 길이 험하고 생각보다 멀다. 소싯적에 바이크 좀 타지 않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말리고 싶다. 썽태우나 택시를 타라.
9_ 꼬 따오와 팡안에서는 연이어 쭙짱과 앤트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쭙짱은 매우 탕웨이를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현재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10_ 꼬 사무이는 세 섬 중에서 가장 크다. 경주마 같은 아우를 둔 덕에, 섬 세 개를 마치 관운장이 오관을 돌파하듯 내달리니 형도 드디어 탈이 났다. 꼬 사무이에서는 이틀을 몸져 누었다. 그는 자다가도 앓는 소리를 냈다.
11_ 휴식을 위해 찾은 끄라비에서는 첫날부터 형이 갑자기 게이 (바이크)라이더한테 납치를 당하고서는 1시간 뒤에야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12_ 끄라비는 Pak-up 호스텔이 진리다.
13_ 뜨랑 즈음에서는 내게 일정 관리를 온전히 맡겼다가는 본인의 수명이 단축될 것을 느꼈는지, 형이 먼저 장기 휴식을 제안해왔다. 뜨랑은 우리가 방문했던 도시 중에 가장 하릴없이 한적한 도시다. 형은 동네 꼬맹이 7명한테 콜라를 사주기도 했다. 총 70밧.
14_ 형이 뜨랑 근교인 빡맹에 가보자고 했다. 멀기는 드럽게 먼데 볼 것은 1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만도 넘는 별을 봤다. 간간히 위험한 속도로 차량들이 내달리는 국도 갓길에서 두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한참 동안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15_ 종종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같이 하는 여행은 배움의 기회가 좀 더 많았고, 혼자 하는 여행은 생각의 기회가 좀 더 많았다. 그렇지만 어떤 기회든 배움과 철학으로 이어가는 것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었다.
16_ 형은 서로 동등함의 사랑을 가장 큰 가치로 삼으면서도, 좀 더 사랑받는 일에는 부담감을 느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깨달은 뒤로는 형을 열렬히 사랑하기보다는 좀 더 아우답게 따르기로 했다. 맛있는 걸 많이 사주니까, 일단. 본인이 사랑을 주는 것에는 언제나 관대한 인간이다.
17_ 리빼 섬은 정말 좋았다. 물가를 빼면.
18_ 배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말레이시아 입국은 그렇게 했다. 랑카위에서는 대형면허도 있는 前육군 운전병 출신의 스틱 운전(예술)을 보았다. 운전석의 좌우가 바뀐 것은 적응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9_ 국경이 바로 붙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태국-말레이시아 간의 시차는 1시간이다. 같은 날에 버스나 예약 등이 있으면 꼭 참고할 것.
20_ 다이어리는 혼자 다닐 때와는 다르게 꽤나 자주 기록이 연체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몰아서 쓰고는 했다. ‘여행자의 삶’ 시리즈와 가장 차이가 난 부분이기도 하다.
21_ 말레이시아로 넘어오면서 악순이를 잃었다. 현재는 더 크고 뚱뚱해진 악순이_수공예 Ver.1과 함께다.
22_ 페낭에서는 Derson의 콘도에서 카우치 서핑을 했다. Derson과는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23_ 의외로 무탈할 것 같던 쿠알라룸프루에서 베드 버그가 형을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곳에서 형은 곧장 발리로, 나는 싱가포르를 거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발도장 여행을 사양한 형은 서핑을, 나는 그래도 한 번은- 하는 마음으로.
24_ 혼자 KL을 여행하다가 루프탑 바에서 Russell Peters를 만났다. 참고로 러셀은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25_ 싱가포르는 동물원이 꽤나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좀 슬펐다. 동물들이 대체로 야위어있거나, 더위에 애를 먹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백호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6_ 발리에는 저녁에 비행기 편으로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형이 쿨한 미소와 환한 얼굴로 '붐붐 킹'이라는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7_ 발리에서의 첫 아침은 해가 정말 끝내줬다. 오자마자 형이 여기는 천국이라며 서핑용 바지를 사줬다. 스벅에 갔다. 끝내줬다. 발리, 태양, 쇼핑, 스벅. 그냥 천국. 오후께에 바다로 나갔다. 내게 서핑을 가르쳐주기로 한 앵거스는 오케이(O.K.) 가이였다. 그의 집요함과 언제나 평타 이상은 가는 나의 운동신경이 묘하게 짬뽕되어 약 18분 만에 파도를 탔다. 파도는 그 날따라 꽤 거칠었다. 그렇지만 30분이 채 안되어 앵거스는 나를 발리의 황금빛 바다로 던졌다. "O.K."
28_ 감을 잡은 듯 신나게 파도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서너 번 정도 잘 넘어지지 않고 파도를 타니 그새 신이 났다. "끼~ 햐~"라고 입방정을 떠는 순간 파도에 부딪힌 보드는 위로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29_ 국격에 일조하는 **항공은 탑승 전 내게 서약서(?)를 요구했고 이에 형은 매우 분노했다. 형은 눈이 터지면 재밌을 것 같다는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아우를 안심 시키려 애쓰며 비행 내내 액션캠 촬영을 했다. 돌아보면 진심이 아예 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30_ 여행형제를 귀국시킨 공식 사유는 동생의 안와골절이다. 수술은 S대 병원의 최고수(후에 알고 보니, Let 美人에도 나오신 의느님)께서 직접 하셨다. 지금이야 웃으며 추억하는 일이지만 이 사건으로 아우는 약 6개월 간 칩거한다. 건강상의 좌절과 여행행제 프로젝트의 중단에서 오는 실망감이 꽤나 컸다.
#Epilogue
2015년의 시대적 상황과 저변으로 보면 형과의 모든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다소 시대를 앞선 것으로 자신한다. **에 미치다 등의 버프를 받았으면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았을 것으로도 생각이 된다. 관심병이 선천적이고 그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상품성의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아 재밌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전개로, 인생의 나름 새 페이지가 열리게 된다. 형에게도 나름의 전환점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시 형이 여행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집한 것이 서핑이었는데, 하필 이 서핑을 하다가 동생의 두개골(안와)이 깨져서 그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바이크에 실려 피가 철철 나는 한쪽 눈을 막고서 긴박함으로 병원을 전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쇼크와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다. 수백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형제끼리 뭐 이 정도의 스토리도 괜찮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은 모두가 가진 숙제다. 숙제를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떼를 써도 이미 내어진 숙제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카공족이라고 하나? 형제도 카페를 정말 많이 다녔다. 휴식과 철학적 공방의 아슬한 경계에서, 우리도 숙제를 많이 했다. 꽤나 열심히.
함께- 라는 것이 여행이 내게 준 진리다. 그리고 그 함께- 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제일 앞에 형을 두고 싶다.
줄 세우기가 세상에서 제일 유치하지만, 아우는 항상 형을 최고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