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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Mar 20. 2019

만약 ~했더라면 가정법

9월 16일, 2015년의 일기를 옮겨 쓰다.

지도에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던 브로모-족자카르타 간의 이동은 인도네시아의 교통을 만나니 자연스레 10시간의 강행군이 되었다. 녹초가 된 몸으로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족자(카르타), 다행히도 예약한 숙소가 생각 외로 아늑하고 근사했다. 샤워를 할 기력도 없어 고양이 세수만 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전 내내 눈을 뜨지 못하다가 꼬박 반나절만인 정오에 가까스로 충전된 몸을 일으켰다. 숙소에서 오토바이를 렌트(Rental)할 수 있다고 하여 보로부두르 사원에 다녀왔다. 생소한 인도네시아에서 잘도 오토바이를 운전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역시 정신줄이 온전하게만 놓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더위는 대단했고 덕분에 바이크 시트 위의 엉덩이까지 땀으로 젖어버릴 만큼의 거리를 달리고 나서야 사원에 도착했다. 도로인지 사람들이 그저 밟고 다니는 들풀 길인지 수차례나 헷갈린 덕분에 다소간 헤매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보로부두르(인도네시아어: Borobudur)는 인도네시아 자와 섬 중심에 위치한 불교 사원이다. 세워진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약 천년 이상된 사원이다. 이 사원에서 볼 만한 것은 4층으로 이루어진 각각의 화랑에 새겨진 부조이다. 시곗바늘 방향으로 부처의 탄생을 비롯한 그의 일생과 행적, 가르침이 정교히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불가사의는 제일 아래쪽 기단이 아직까지 숨겨져 있는데 미래를 예언하는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스투파(Stupa, 부처님이 안에 들어 있는 종)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와이삭 축제)에는 등불을 든 불교신도들의 행렬이 있고 밤 12시까지 보로부두르 사원이 야간 개장하면서 전 세계 불교도가 모여서 회랑돌기를 한다. -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미스테리(Mystery) 할 만큼 크고 웅장한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으로 족자카르타 여행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특히나 이 곳에서의 석양은 각각 건축물의 세밀한 매력을 변화무쌍하게 보여주며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마을과 사람들을 너무 오래 살피고 오느라, 사원에 도착한 지 채 삼십 분도 되지 않아서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쉽사리 보기 힘든 장관에 카메라를 내려두고 그저 사원 위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좋았다.


마음에 꼭 드는 숙소에서 다시 평온한 하룻밤을 보내고 족자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유다(Yudha)는 일전에 Jon(a.k.a. 우리 형)과 나의 신촌 집에서 재운 적이 있는 친구였다. 신촌 집에서 두 형제가 함께 살면서 벌였던 작당모의 중, '카우치 서핑'의 추억 편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유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중에, 그가 먼저 내게 연락을 주었다. 자신의 마을을 가이드해주겠다며.


직접 본인의 차량을 끌고 나와 내가 머문 숙소로 왔다. 그를 작은 체구와 깊은 미소로 기억했는데, 여전한 구석이 있었다. 오히려 본인의 나라에서 손님을 맞으니 한층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분위기였다. 현재는 이 곳 족자카르타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가 이끄는 동선을 따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발리에서 난 사고에서 만난 응급실의 젊은 의사(Doctor)가 그의 동문 후배란다. 세상에는 참 연결고리가 많다.


유다는 나를 데리고 산속에 위치한 박물관에 갔다. 그리고 족자의 명물이라는 구덱(Gudeg: 잭프룻에 코코넛 밀크와 향신료를 넣고 익힌 후 이것을 밥과 계란, 두부, 소고기나 닭고기 등과 같이 먹는 것)을 점심으로 제공해주고는, 크라톤(Kraton) 근처의 오래된 마을에 데리고 가주었다. 깔끔한 반나절의 투어였다.


그는 나와 이동하는 와중에 3번이나 기도(무슬림)를 했는데, 단 한 번을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자리를 찾아 기도하는 모습에서 굳은 신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매번 양해를 구하고 종교나 알라(Allah)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를 종일 나와 함께한 그는 "Be grateful."이라는 말을 남기고 미소와 함께 떠났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여행 내내 잘 발전시켜 보리라고 다짐해본다. 다음 날엔 짧은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한 나라의 여행을 정리하고 떠날 때면 항상 아쉬움이 있다. 좀 더 잘할 걸, 좀 더 즐길 걸, 좀 더 다가갈 걸, 등등의 후회가 든다. 물론 그만큼 다시 돌아온다면 더 잘해봐야겠다- 라는 기대감도 함께 가지게 된다.


이런 것을 생각해볼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는 언제나 지난 것을 아쉬워한다. 다시 돌아오면 좀 더 잘할 것을 약속하면서.


마지막 남은 루피아를 모두 꺼낸 돈으로 겨우 택시를 흥정해서 잡아 타고 공항으로 갔다. 2시간 가까이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대기 중에도 시종일관 담소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살짝 스쳤다.


이내 힘주어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여권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글씨가 좀 촌스러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Yokyakarta, Indonesia, 2015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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