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033
오랜만의 게스트하우스.
아직 부지런이라는 짐을 미처 내려놓지 못한 듯이 마음과는 달리 몸이 저절로 깨어났다.
이렇게 자꾸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야, 원.
1층으로 내려가 칠 줄도 모르는 젬베를 쳐봤다.
괜히 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아침을 먹으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골목의 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길에서만큼은 항상 아침을 든든히 먹는 습관이 있고, 무엇보다 커피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시 숙소 인근의 카페 골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는 물을 전부 사 먹는다.
태국의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식수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불편을 통해,
일상에서 잊어버리고 사는 행복과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오후에는 카오산 근처에 있는 왕궁으로 간다.
400밧이라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좋은 느낌을 준다.
왕궁 여기저기 고개를 기웃대다가 문득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이 사진 한 장 없이
오롯하게 이야기만 담는 이유가, 그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순간마다 나의 확신은 왠지 오락가락하는 것만 같았다.
방콕은 교통체증이 엄청나다.
유리를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서 약속시간에 한 시간이나 지각을 해버렸다.
유리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얼빠진 두 지각자를 맞아주었다.
그리고는 함께 인신매매단 승합차 같은 밴을 타고서는 랑싯(Rangsit)으로 갔다.
유리의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랑싯에는 방콕 대학과 탐마삿 대학의 캠퍼스가 있다.
두 대학을 사이에 둔 큰길을 따라 괜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현지 대학생들과 현지식 저녁을 경험해보기로 한다.
일본식 화로구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현지식으로 배를 채우고,
바(Bar)로 자리를 옮겨 태국산 위스키를 마셨다.
‘밤(Bomb)’이라는 스무 살의 태국 청년을 유리가 소개한다.
태국인 친구가 한 명 더 늘었다.
현역 배우로 태국의 사극에 출연 중이라는 여자(인) 친구를 파트너로 데려왔는데,
내가 보기엔 엄청 숙맥인 녀석이라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우연하게 길거리 적선을 하는 코끼리와 코끼리 주인을 만났다.
주인의 명에 따라 재롱을 부리는 코끼리의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묘한 눈빛으로
내 눈을 함께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