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앙코르와트

#073

by J임스

#073


늦장을 피웠다.

오랜만에 쾌적한 에어컨 바람을 쐬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앙코르와트가 바로 지척에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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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옆에도 마켓이 하나 있었는데, 아침에 나가서 뭔가 탐험가스러운 셔츠를 하나 구입했다.

왼쪽 주머니에 괜히 다이어리와 펜을 꼽아보았다.


근사하다.


나갈 채비를 하고 로비로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다윈이 나를 보더니 폭우라면서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폭우 속으로 자전거를 밀었다.

뒤에서 사람들의 얼빠진 시선들이 조금 느껴졌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청개구리.

아무래도 불로 뛰어드는 나방인가 보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폭우 속으로 자전거를 내몰았다.

이미 발목 높이 정도로 차오른 물바다를 가르는 바퀴를 보면서 괜히 히죽히죽 웃음이 난다.


물과 폭우의 저항에 페달은 점점 무거워만 지는데, 마음은 되려 점점 가벼워진다.

이 기이한 광경에 사람들도 다 저마다의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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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훈이 안내했던 길을 따라서 앙코르 유적지로 들어갔다.

슬슬 비가 그치면서 해가 난다.


비가 온 후의 앙코르와트는 차분했다.

폭우 덕분에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 같아, 외곽의 유적지를 먼저 둘러보기로 한다.


생각대로 아직 아무도 없다.

커다란 몸집의 어미소와 아기 송아지만이 유적의 자락에서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고요하다.

평온하다.


하루 반나절을 내내 앙코르 유적지 안에서 보냈다.

날이 어느새 어두워졌지만 오히려 어둠 속으로 계속 자전거를 몰았다.


신기하게도 관광객들이 나간 자리에는 현지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또 사람들이 살아가는구나.


앙코르의 정글로 들어가니,

고요한 숲 속의 어둠에 비친 사원의 실루엣이 스산하면서도 묘한 기분을 준다.


무섭지만 설레는 동시에 신비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마치 발굴 당시로 돌아온 듯 한.


유적지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모인다.

문득 그들의 삶에 침입한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자,

그대로 자전거 핸들을 돌려 유적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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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나이트마켓에 들러 유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하루 더 앙코르와트를 돌아본 후, 밤(Night) 버스로 국경을 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다녀서인지 물 낭비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십 분이 넘도록 온수 샤워를 했다.

침대에 몸을 뉘우니 떠나기 전에 바이욘의 미소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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