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083
신기하게도 아침이 되니 기운이 좀 난다.
하기사, 몸에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을 그렇게도 비웠으니 내 몸 안의 독까지 다 빠져나갔겠지.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인을 만나 증상을 설명하니
병원에 꼭 가야 한다면서 계속 주의를 준다.
주의가 거듭되니 괜히 협박으로 들리는 것도 같고-
아픈 게 걱정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선 약국을 찾았다.
어리석은 마음을 만나면 정말이지 몸이 고생을 한다.
약사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Strong’과 ‘Good foods’ 정도는 알아들은 것 같다.
아마도 약이 강하다는 말과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겠지.
다시 인도식을 먹을 자신이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바라나시에 한식당이 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가트 부근 골목에 있대서 릭샤를 타고 갔다.
골목이 매우 복잡하고 좁은 탓에 릭샤는 입구까지만 나를 데려다줬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아니면 절박함이었는지, 그 복잡한 골목을 잘도 뒤져서 금세 찾아냈다.
라가 카페(Laga Cafe)에 들어서니 한국인 여행자들이 몇 명씩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메뉴판에서 익숙한 단어들을 만난다.
김치라는 단어에 무조건적으로 끌리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 피는 속일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자 혹은 세계인이라는 자만과 편견은 나를 의식적으로 한국적인 것들과 멀게 했다.
그렇게 먼저 찾지도 않았던 한식당과 한국사람들 속에서야 비로소 안정감을 얻는 내 모습을 느끼니,
스스로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픈 와중에도 괜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흰쌀밥에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눈을 마주친 건너편 일행이 합석을 권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는 그 순간이 사실 그리웠나 보다.
나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짐을 챙겨서 그들 옆으로 가 앉았다.
한참을 가만히 듣기만 했는데도 그냥 좋았다.
노스탤지어(Nostalgia)- 란 아마도 이런 걸까 싶었다.
은주 선배는 사진을 찍으러 인도에 왔다가 오히려 사진기를 내려놓았다고 말씀하셨다.
도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동안과 눈빛을 가진 그녀는 내내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의 이목과 집중을 단번에 이끌어내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화야 누나와 성혁 씨도 각각 본인들의 여행담을 들려주면서 내게 주의할 사항들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오라로 나를 치유해줬을 뿐만 아니라,
먼저 자리를 떠나면서 내색 없이 이 못난 후배 여행자에게 식사까지도 챙겨주었다.
아픈 몸이 잠시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부끄러웠다.
작은 마음의 방을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더 키워볼 수 있을까.
식당을 나와 근처의 유명한 라씨(Lassi) 숍에서는 한참이나 어린 두 여행자, 혜련과 나원을 만났다.
나도 조금 더 일찍 여행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쯤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녀들이 가트의 화장터로 가는 길이라고 해서 잠시 동행하기로 했다.
버닝(Burning) 가트는 말 그대로 시신을 태우는 곳이다.
힌두교도들은 죽음 후에 신성한 갠지스 강에 화장된 그들의 재가 뿌려지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어느새 장례행렬이 계속되는 골목을 만났다.
색색의 천으로 뒤덮인 시신을 좌우로 사람들이 운구하고 있었다.
무리는 그들만의 주문인 듯한 말을 반복적으로 외며 빠른 속도로 가트를 향해 내려갔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우리들도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골목 끝에서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야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다.
공기가 무겁다.
사방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구분 없이 지독하게 교차하고 있다.
카메라를 치우기 위해서 잽싸게 등 뒤로 돌려 맸다.
사방에서 죄여 오는 무거운 공기는 좀처럼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더욱 찰나처럼 느껴진다.
이 무수한 영혼들은 모두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픈 몸이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다.
정리하는 데는 아마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