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086
새벽에 큰소리가 들리고 웅성웅성하니,
밖에서 축제 때문에 무엇을 하는가 싶다.
가만히 누워서 무얼까- 어떤 모습일까-
그러면서도 다시 잤다.
현재의 나는 아마 게으름과 초월의 경계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빨래를 말리러 오전에 옥상에 올라가니 일본인 커플인 카니와 사토가 있다.
카니가 커피를 만들고 있길래 거의 빛의 속도로 뛰어 내려가 방에서 내 텀블러를 집어왔다.
진지한 카니의 표정을 보니, 그도 나 못지않은 커피광인가 보다.
그가 내려준 커피를 음미하면서 셋이서 널브러져 있는데 심상치 않은 차림의 할배가 올라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히피 같은 차림의 사이먼은 자연스럽게 담배를 말며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꽃이 폈고, 여느 여행자들처럼 삶과 여행, 사랑에 대해서 세 시간이나 함께 떠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우리는 어쩌면
여행자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닫힌 사고를 갖지 않는가- 라고 서로에게 거듭 반문하면서.
사이먼이 인생의 선배로서 카니와 사토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사람을 서로 묶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서로 묶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맥주를 혼자 네 병이나 해치운 사이먼은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간다.
카니, 사토랑도 서로의 손을 꼭 맞잡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방으로 내려와서 다시 짐을 꾸린다.
바라나시도 역시 떠나려니 막상 아쉽다.
게다가 오늘은 축제.
하지만 내게는 남은 인생의 매일이 축제다.
아그라(Agra)로 가는 열차가 한산하다.
밖은 한창 시끌하고 요란하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한낱 여행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