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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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무식하게도 털어 넣은 덕분인지, 아예 몸에 별 감각이 없다.
오늘은 혼자 남았다.
아니, 운비가 아직 남았구나.
마음이 따뜻하고 성격이 참 둥근 이 녀석은
곁에서 지치고 못난 형을 계속 위로해준다.
함께 마주 앉아 대중없는 음악 이야기로 한 반나절을 금세 보냈다.
오늘도 타이타닉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 곳에서 몇 날을 있었던 것만으로도 마치 오래된 사람인 양 기분이 드는 게,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마침 폴루가 먼저 체크아웃을 부탁해서 묵묵히 그냥 체크아웃- 해주었다.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고 사실 몸도 좋지 않아서 좀 더 버텨볼까도 싶었는데,
역시 이 유명한 사막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짐을 가지의 레스토랑에 던져놓고서 운비와 라자스탄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는 ‘Little Italy’에 갔다.
사실 인도의 맛에 적잖이 질리기도 했고 해서 오랜만에 입과 위를 호강시키기로 했다.
옆 테이블에 한국인들이 있어서 합석했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 세 여성과 더욱 어려 보이는 한 남자의 묘한 조합이다.
남자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인도에 왔던 경험자로서,
세 아가씨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라고 주장했다.
내가 세 사람이 본인을 지켜주는 건 아니냐며 웃었더니
모두가 깔깔대는 가운데 혼자만 벌건 얼굴이 되었다.
진지한 사람인가 봐.
괜스레 미안해졌다.
진 누나는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가장 어려 보이는 뻔뻔한 외모를 가졌다.
테이블엔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세팅되었고, 우리들의 대화도 계속 불어났다.
주로 사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진 누나가 난데없이 ‘쟤도 외롭지’라면서 나를 꼭 집어준다.
뭔가 한 방 맞은 기분-
외로워요, 맞아.
항상 그랬다.
그래도 이렇게 알아주는 이가 종종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갑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진 누나와는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운비는 늦은 밤까지도 굳이 직접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함께 릭샤를 기다려줬다.
도시와 사람들에 아쉬움을 남긴 채로 또다시 밤기차에 오른다.
다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