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장 P와 같이 컨퍼런스 콜하는 중에 욕을 하면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파트장 P도 당황한 목소리로 나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한다. 담당자 K의 돌발 행동 이후로는 거의 연락이 없다. 알제리 본사 업무는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현지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본사에서는 아무도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담당자 K의 이상한 행동은 계속 이어졌다. 현지인들에게는 메일을 보내서 미안하다며 본인이 잘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같은 메일을 보면서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담당자 K가 유독 나에게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일하면서 담당자 K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압박을 준 것 같고, 그게 아니더라도 K는 뭔가의 돌파구를 나에게서 찾는 듯 하다. K가 쏜 화살에 나는 큰 데미지를 입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보낸 메일 중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내가 작년에 왔을 때, 담당자 K의 교체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부분에 대해서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K가 나에게 그러면 안된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많은데, 무조건 한 사람을 구석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친구도 아니고 업무적으로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제대로 자기 컨트롤이 안되는 것이다.
이제는 진정으로 이 K를 나의 마음 속에서 끌어 내자. 그리고, 그 어떤 감정 소모도 하지 말자. 가전 영업은 진정 업무로만 쳐다보고 관리하자. 담당자가 없으면 내가 본사와 공장과 연락해서 직접 운영해도 된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관리하면 된다. 내년에는 떠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하고 실적을 만들면 된다.
"어머니와 통화"
매일 점심을 먹고 어머니께 전화 드린다. 오늘은 전화를 안 받으셔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크고 밝은 목소리로 최근의 근황을 이야기 해 주셨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식사도 잘 안하시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셔서 우울증으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이 된다.
팔순의 노모를 걱정하는 아들이다. 한국에서 더 잘할 것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부모님과 같이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나이 팔십이 넘으면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은 건강하신 두 분이 언제 냐 곁에서 떠나 가실지 모른다.
자주 연락을 드리자. 아버지, 어머니와 통화하면 자주 말씀하신다.
"아들 건강해 그리고 출장자가 있으면 홍삼 사가지고 오라고 해서 홍삼 챙겨먹어"
지난 3월에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홍삼을 두 통이나 주셔서 잘 먹고 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내와 만난지 23년"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7월의 어느 날이다. 회사 첫 출장으로 토론토를 가게 되었고, 토론토 북쪽 외곽에 맥도날드에서 우연히 만나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20대 초반 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에 왔다가 점심 챙겨 먹으러 온 나를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가 호감이 없었으나, 같이 일했던 한국분의 도움으로 계속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의 이름은 건제 아저씨. 아직도 토론토 어딘가에 살고 계실 것 같은데, 20년이 더 된 일이라서 아직도 토론토에 잘 계실지 모르겠다. 그 옛날 닷컴 버블이 있던 시절인데, 아직도 우리를 기억 하실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만난지 23년 되는 날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축하를 해 준다. 사실 오늘은 아내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 날이다. 그렇게 우리는 정식으로 사귀었고, 서로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서로 그 때를 생각하며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이야기 했고, 서로가 좋아 했었다. 생각만 해도 서로 좋았던 시절. 우린 처음 캐나다에서 만났고, 지금은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 계획을 같이 만들고 있다. 해외 생활에 익숙한 우리 가족은 이렇게 캐나다에서 다 같이 살게 되나 보다. 앞으로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계획이 있으니 아마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박이일을 보면서"
퇴근 후 백색 소음으로 한국방송을 틀어 놓고 저녁 준비하고, 밥 먹고, 설겆이하고, 샤워하고 등등 많은 일을 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엠비시 라디오 미니 프로그램으로 새벽 방송을 가끔 듣고, 집에 와서는 아침 방송을 듣거나 티비를 틀어 백색 소음을 만든다. 나름 집중력하려고 노력한다.
주말 프로그램인 일박이일은 나에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별 내용은 없어 보인데, 출연자들이 개인기로 2시간 넘게 방송을 이끌어 간다. 이런 프로가 흔하지 않는데다 거의 10년을 방송 중이다. 김종민님은 이미 10년이 넘은 프로 예능러다.
프로그램 컨셉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나, 출연자들이 계속 바뀌고 있다.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바로 교체이다. 그래서, 예능인의 삶은 쉽지 않다. 어떻게 작은 흠도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생활이다. 난 그렇게 못 산다. 돈을 준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
오늘도 일박이일을 보면서 한국 아파트에서 기러기로 혼자 살면서 봤던 그 날의 기억이 소환된다. 혼자 살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정해져 있는데, 이 때는 주로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말을 보냈던 듯 하다. 시간을 너무 쉽게 사용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정말 보고서가 많아서 바빴던 날"
아침부터 본사 S부장에게 연락왔다. 왜 이렇게 시스템 관리가 안되냐고 타박을 준다. 지금 문제 생긴 것을 고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일단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은 "죄송하다" 이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물론 나도 모른다. 그러나, 대화를 부드럽게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일단 머리숙여 죄송하다고 하면서 주는 떡고물을 받아 먹는 것이다. 아침 출근해서 1시간 동안은 S부장의 불만을 다 받아줘야 했다. 현지인들이 만든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계속 타박하는 말을 들으면서 오전 시간은 그렇게 흘러 갔다.
우리를 담당하는 본사 담당자는 현재는 거의 부재라도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주재원인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과 연락하고 해결해야 한다. 업무가 정말 많이 늘었다.
이제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일 모로코 출장 일정이 있어서 잠자기 전에 출장 짐을 쌓아 놓고 자야 한다. 이렇게 7월 한달도 지나갔다. 오랜만에 본사 K 그룹장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아직 보고 자료를 만들지 못 했다. 모로코 가는 에어프랑스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 내일 비행기에서 만들자. 맑은 정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