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들
잘못을 저지르고 큰 일을 겪으며 진짜 나와 마주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며 각 잡고 SNS를 종횡무진했다. 인스타, 블로그, 브런치. 나의 "꾸준함"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꾸준한 사람"이 멋지다 생각했는지, 나는 그렇게 온라인상의 내 모습을 계속 쌓아가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잘 쌓아가고 있다 자부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온라인상의 나"는 "내가 바라는 나"로 잘 커가고 있었고, "실제의 나"도 그 모습과 동행하며 성장하고 있다 착각하며 살았다는 걸, 최근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서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현실의 누추한 나를 직시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 살다 보면 별 일 다 겪는다고 말하지만, 내가 겪은 일은 가볍게 넘길 사건은 아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고, 강력반 형사님과 대면하는 등 실제로도 가벼운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닌 것이다. 이 사건이 외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 내 삶의 가장 중심에서 터졌기에 수많은 감정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내 안에서 떠돌고 있다. 나의 밑바닥을 정나라하게 들춰내야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있기에 기록조차 남겨놓고 싶지 않은 것이 그나마 솔직한 심정이다.
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포장하느라 진짜 나는 이리도 부족했구나. 그동안 글을 쓰던 시간들은 나를 위함보다는 보이는 나를 위함이었구나. 그나마 남을 위해 썼다지만 글쓰기라는 행위도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니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구나. 짧은 시간 많은 걸 깨닫게 된다.
나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빨리 수습하고자 경찰서에 가서 강력반 형사님도 만나고, 법원에도 가고, 시청에서 보내준 심리 상담도 적극적으로 받겠다고 열심히 발버둥 치지만 정작 나 자신의 감정이 뭔지 파악을 하지 못해 불안하기만 하다. 아이들 앞에서, 그리고 회사에 가서는 아무 일도 없는 척 웃고 떠드느라 진짜 내 모습을 또다시 숨기고 있기에, 언젠가 내 안의 묻어둔 감정이 파도처럼 몰려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 사건이 잘 마무리돼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그땐 나 자신부터 돌봐야지. 포장하려들지 말아야지. 나를 위해 글을 써야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 못 드는 이 밤에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인생무상이라 했던가. 사랑 없이 살아온 삶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꿈꾸는 삶에 도달했다 한들 허무함을 이길 방도가 없다. 그러니 '인생무상'은 사랑이 빠진 삶에 사용할 수 있는 사자성어인 것이다. 너무 진부해서 이제는 글쓰기의 도구로도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사랑'. 나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을 놓친 채 나머지 것들을 열심히 쫒았는지도 모른다. 그 열심히가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착각하면서. 이번에 겪은 이 일도 나의 '사랑 없음'에서 출발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라 생각되지만, 그런 긍정적인 결론에 취해 지금의 상황을 예쁘게만 포장하지 않는 내가 되길 바란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에 눈멀지 말자. 다정해지자.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쓰자. 사랑하자. 앞으로의 글쓰기가 나의 이런 다짐을 굳건하고 단단하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