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낳고 죽을뻔한 경험을 한 후,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감사함에 조리원도 거부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기적같이 옮겨진 후 한 달은 더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끈덕진 모성애는 나의 회복 속도를 앞당겨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품도 모른 채 배고프다고, 졸리다고, 울고불고하고 있을 딸아이 생각에 조리원이 웬 말이냐며, 집으로 바로 데려와 회복도 되지 않은 몸으로 무식하게 아이를 키운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둘째는 다행히 집에서 혼자 낳지 않아 중환자실 행은 면했다. 비록 구급차에서 낳긴 했지만, 아이를 받아주는 119 대원도 있었고, 남편과 딸이 곁을 지켜줬기에 마음이 편했다. 내가 먹는 항생제 때문에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던 첫째 때의 기억 탓에 둘째는 어떻게든 완모를 해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시작한 게 21개월. 퇴근한 엄마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젖을 빨던 아이는 이제 7살이 되었다.
이런다이내믹한 이야기가 어디 출산뿐이랴. 출산부터 시작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돌봄"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성장"이라는 단어는 조금 진부한, 그런 나만의 사는 이야기가 녹아있다는 말이다.
그 반짝이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둘째 유치원 등원길에 번뜩였다. 마침 아침부터 보슬보슬 내린 비 덕에 흙내음을 가득 담은 공기가 차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했고, 그 향을 맡으며 아들은 "이 냄새가 참 좋다"라는말을 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 찰나를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순간 들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