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오랜만에 맑다. 마침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 이런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지. 오전에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 겸 조금 멀리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옆에 초등학교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하교하는 아이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엄마들로 학교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걸 보고 이곳에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삼삼오오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어릴 때가 생각났다. 내가 어릴 땐 학교 앞에 이렇게나 많은 엄마들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앞에 나온 엄마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오전에 약속이 있었는지 예쁘게 꾸미고 서있는 엄마, 좀 전까지 집에만 있다가 나왔는지 모자를 푹 눌러쓴 엄마, 이미 엄마 모임을 끝내고 함께 왔는지 여럿이 모여있는 엄마. 하지만 그중에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학교에서 쏟아지는 아이들의 성비는 비슷한데, 학교 앞에서 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는 오직 엄마뿐이었다.
어제는 첫째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대의원회가 개최되었다. 학교 발전 방향을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학부모회 활성화 방안 및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함이다. 딸이 학급 회장이 되는 바람에 나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대표가 돼버렸고, 어제 그 회의에 참석을 해야 했지만 갑작스럽게 중요한 미팅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부모는 나만이 아니기에 남편을 회의에 참석시켰다. 회의에 다녀온 남편 말로는 학부모 중 남자는 자기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교감선생님이 남자분이셔서 다행이었다나. 회의에 참석하고 나니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지금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지, 엄마들의 요청사항은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참석하길 잘했다고. 그렇다. 이 영역은 여자의 것만이 아니다. 남자인 아빠도 충분히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분명 프리랜서 아빠도 있을 것이고, 내 남편처럼 오전 반차를 쓸 수 있는 회사원 아빠도 있을 것이고, 가끔은 집에서 육아를 하는 아빠도 있을 터인데, 학교와 연관된 일에는 왜 하나같이 엄마들만 모이게 된 것일까.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일에 의문을 제기해 본다.
하는 업무 때문에 가끔 협상 자리에 앉게 된다. 회사는 나에게 1조 미만의 돈으로 1년 동안 협력 업체를 잘 운영해 보라며 자유와 권한, 책임과 의무를 주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리 큰돈이 아니기에 회사에서는 나의 일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늬만 회사원이지 가끔 사업을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의사 결정이 필요한 회의에도 참석해 나의 목소리를 내고, 결정을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미팅을 하거나 회의를 하게 되면 보통 여성은 나 혼자 뿐이거나 많아야 한 명 더 있을 뿐이다.
나와 협상하는 마케팅 담당자는 대부분 VP 이상이기 때문에 여성을 보기는 더 어렵다. 국내 에이전트 지사장들도 여자가 손에 꼽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다가 여성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 '저 여자분은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육아는 어떻게 했을까.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했을까.' 같은 여자로서 궁금한 점들이 많다. 그만큼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초등학교에서 하원하는 아이들은 남녀 성비가 비슷한 채로 쏟아져 나오는데,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온통 남자들 뿐이다. 그래도 여성의 사회 진출 비중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중요한 회의 석상에서는 여전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내 일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증명해 내고 싶다고 할까. 나 또한 육아에 전념하느라 일에 대한 열정을 놔버린 적이 있었다. 정말 버티기식으로 8시간을 채우고 집으로 달려와 아이들에게 모든 열정을 쏟았던 시절이 대략 8년 정도 된다. 그 긴 시간 동안 월급 루팡이 되어 중요한 자리를 과감히 포기하고 남자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내 자리를 찾고 있다.
살다 보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로 인해 무게 중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잠시 뒷걸음질도 치고 내려놓기도 하고 머뭇 거리며 재자리를 걸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금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태도가 확고하다면 언제든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내고 싶어 지금의 일에 악착같이 붙어있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여자들은 여러 분류로 친구들이 나눠진다.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이런 이분법적인 상황이 펼쳐지다 보니 서로의 이해폭과 마주침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워킹맘"과 "전업맘"이란 단어는 이런 이분법적인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워킹파"나 "전업파"라는 단어는 없는데 말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조금 더 다양한 삶이 성별과 상관없이 펼쳐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뿐이다. 여성도 육아에 전념할 땐 하다가도 다시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남성도 자신의 삶을 살다가도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학교 앞에 갈 수 있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삶 말이다.
마침 재택을 하며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지난 2주 동안 사무실에서 보고서 쓰고 회의한다고 너무 시달렸으며, 심지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쓴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였기 때문이었을까. 학교 앞 엄마들의 모습을 보다가 잠시 스친 생각을 기록해 본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누군가가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능한 한 많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이웃의 방식이 아나라 자신만의 방식을 세심하게 찾아내어 추구했으면 한다.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