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기록해 놓은 글을 읽고 다시금 알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라고요. 그때의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무슨 위로가 그렇게 받고 싶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20대 중반의 제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전쟁터 같은 사회에 들어가 애송이처럼 어리버리하던 시절. 그때 들었던 말 중에 저를 외롭게 만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열심히 필요 없고 결과를 가져오란 말이야!
나의 과정을, 그러니까 순간순간의 삶을 전부 묵살해 버리는 이 말은 결과만 중시하는 이 세상을 향해 분노도 품게 했습니다. 이제는 힘들어도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도 못 하는 각자도생의 세계로 진입했구나 하는 아찔함도요.
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세심하게 들쳐보는 세상을 허락했습니다. 저는 책을 펼칠 때마다 그 세상의 시민권을 얻으며 그렇게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저는, 책을 읽는 행위에 사적인 즐거움보다 드러내는 무언가에 더 많은 가치를 뒀던 거 같습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요'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걸 느꼈어요'를 드러내기 위한 책 읽기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고백해 봅니다.
책이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듯이 나도 책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간을 더없이 즐기고 싶었습니다. 책과 나만 아는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분위기를 굳이 표현하지 않고 그냥 즐기는 것이죠.
"자유로움"
그것을 최근 잠시나마 만끽하고 나니 좀 더 책과 가까워지고 누구보다 나 자신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크나우스고르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정확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무시하는 것이며, 또한 바로 정확히 온갖 판단과 가식과 입장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서, 그 무언가가 스스로 드러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글쓰기가 이런 것이었다니, 이 엄청난 경지까지 오르려면 크나우스고르처럼 30년을 꼬박 글을 쓰며 삶을 쌓아 올려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작가도 아닌 저는 이 좁은 공간에 글을 쓸 때도 참 자유롭지 못했거든요. 지금의 이 글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무튼 누군가는 제 글을 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쓰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나우스고르의 에세이를 읽고 나니 저의 이야기가 쓰고 싶어, 일기장에 써야 할 글을 이곳에 기록합니다.
더불어 9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책이 종이의 질량과는 무관하게 묵직한 가치를 제 안에 남기며 진하게 공명을 일으켰다는 지금의 감정도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