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소화불량이 찾아오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몸을 먼저 움직여본다.
위가 다시금 알람을 보낸다. 도저히 소화가 안된다고. 음식물을 소화시키지 못함과 동시에 지금의 현생도 소화시키지 못함을 나는 알아차렸다. 사실 현실이 크게 변한 게 없는데 나의 마음가짐이 지금의 삶을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걸,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작년 12월. 나는 오랜만에 내 삶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뇌를 해야 할 시간을 맞았다. 회사에서 한번 더 집중하고 달려볼 것인가,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인가.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두 가지 갈림길 모두 올해가 아니면 안 되는 사연들을 품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회사에 올인하지 않았음에도 진급의 기회를 얻은 건 이 또한 내가 받은 운인 것을. 그 운을 박차고 휴직을 했다가는 마지막 종점에서 스스로 기회를 박탈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정말 기회냐는 아리송함도 있기에 이 길을 선택한다는 것도 참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것. 지금 피하면 그 기회를 잡을 때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을 다시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갈림길. 엄마로서의 삶이자 내 자신의 삶. 올해로 4학년, 1학년이 되는 두 아이에게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일 때문에 놓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왠지 계속 지금처럼 산다면 이 소중한 시간을 놓칠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지나가 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다시 경험할 수 없다 생각하는 내 마음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론적으로 난 회사를 선택했고, 그렇게 회사에 열심을 다하자고 지낸 시간이 이제 한 달여 되어간다. 아무리 회사에 좀 더 열심을 다해보자고 스스로 다독인들 아이들의 기나긴 겨울 방학은 여전히 다가와 신경 써야 할 일 투성이고, 업무에 (예전보다 더) 집중하다 보니 체력은 금세 고괄 되고야 만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명목으로 운동을 안 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니 퇴근 후 지친 몸 때문에 아이들을 결국 티비에 맡기게 되는 신세마저 되었다.
최근 나는 저녁마다 힘든 몸에 음식을 마구 집어넣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먹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피곤하니까, 힘드니까, 뭔가 공허하니까.
그 상황이 지속되다가 드디어 오늘, 나의 소화 기관이 다시금 알람을 준다. 소화가 안 돼, 소화가 안 돼. 얼굴이 붓고 몸상태가 이상할 때 단지 살이 찐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굶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과유를 뒤로하고 이제는 깨닫는다.
지금의 삶이 나에게 버겁구나. 변화가 필요하구나.
방학중인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고, 회사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어 어찌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Back to the Basic. 땀 흘려 운동하고 소식하고 삶에 틈을 주고 마음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어젯밤에는 샐러드를 먹었다. 삶에 틈을 주고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아직은 정확히 몰라 나는 몸을 먼저 움직인다. 내 몸에 집중하고 나를 좀 더 보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삶에 힘을 빼는 나를 발견하겠지.
몸에 근육을 붙이듯,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건강한 삶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