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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 Jun 19. 2024

[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 ]

에세이 연재

'활짝 예쁘게 피운 모습을 며칠밖에 못 본 것 같은데….'     


걷던 길에서 시들어 가는 꽃을 보았다. 그 꽃은 잠시나마 아름답게 피었지만, 그 모습을 오래 볼 순 없었다. 이 광경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우리도 태어나 성장하지만 결국은 ‘천천히’ 그렇지만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사라지는 과정을 거친다. 삶의 짧고 강렬한 순간들은 때때로 우리의 존재 이유와 시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일상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삶의 불확실성이 우리를 괴롭힐 때, 그 아름다움은 흐릿해진다. 우울증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극단이다. 마치 꽃이 시들어 가듯, 우리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점차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랄까. 우울증에 빠진 나 같은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삶의 색깔이 무채색처럼 바래고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울증은 단순히 '슬픔'이나 '나태'가 아닌, 정신 건강 문제이다. 그것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개인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으며, 본인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내 우울증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 동료였던 그 사람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씨발새끼야!"          


그 사람은 같은 업무를 8년째 그 자리에서 계속해 오던 사람이었다. 내가 업무 파악 속도가 느리다면서 매번 폭언을 일삼았다. 좋은 소리도 아닌,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머리와 몸이 따로 분리된 것처럼 컨트롤이 안 됐다. 퇴근하는 길에 차를 벽에 들이박고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처음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정말 내가 그렇게 숨 쉴 가치도 없는 인간일까? 그런 욕을 들어야 할 만큼?'     


난생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선생님이 엄연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면서 인사팀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데도, 거친 물살을 끝내 못 이겨낸 둑이 터져버린 것처럼 눈물이 범람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져 갔다.     

마치 시들어 가는 꽃이 다시 봄을 맞이하듯이, 우리도 적절한 지원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아침의 고요함을 깨우는 커피 한 잔. 많은 이들이 그 향긋한 향과 쓴맛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는 일상의 피로를 덜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커피가 그렇듯, 우울증도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끊기 힘든 존재가 되곤 한다.          


"또 커피인가…."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끓인다. 커피머신이 뿜어내는 증기와 함께 방 안에는 커피의 향이 가득하다. 이 향기는 나를 깨우고, 하루를 시작하게 만드는 일종의 '의식'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내 우울한 감정과 싸우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 되었다.     

우울증은 마치 커피처럼 처음에는 그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 그저 조금 더 피곤한가, 조금 더 무기력한가 싶을 때쯤, 어느새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커피 한 잔으로 피로를 덜어내듯, 우울한 감정을 잠시나마 잊고자 커피를 찾게 된다.          


"이 커피가 나를 살린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종종 독백하듯 스스로 묻는다. 커피는 우울감을 느낄 때마다 의지하게 되는 대상이 되었다. 그 ‘쓴맛’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가 그렇듯, 우울증도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몸에 무리가 가듯, 우울증도 점차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해 간다. 커피를 끊으려 하면 두통과 피로가 찾아오듯,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하면 더욱 깊은 고통이 밀려왔다.          


"오늘은 커피 없이 하루를 버텨볼까?"          


어느 날 스스로 결심해 본다. 그러나 그 결심은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 피로와 무기력이 밀려올 때면, 다시 커피에 손이 가는 것이다. 우울증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 그 늪에 빠지면, 벗어나기 위한 결심은 쉽게 무너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커피를 끊으려고 애쓰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줄여보는 건 어때? 우울증도 한꺼번에 나으려 하지 말고, 조금씩 이겨내 보는 거야."          


친구의 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커피와 우울증, 둘 다 한 번에 끊어내려 하지 말고, 조금씩 줄여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변화를 시도했다. 커피의 양을 줄이고, 대신 물이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늘렸다. 우울한 감정이 밀려올 때면, ‘작은 일’이라도 성취해 보며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그 순간을 즐기며 ‘천천히’ 음미했다.          


"천천히, 천천히…."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커피와 우울증, 둘 다 내가 이겨내야 할 대상이지만, 그것을 너무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커피’ 없이도, ‘우울한 감정’ 없이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우울증은 커피와 같이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지만, 그것을 조금씩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커피의 향을 ‘천천히’ 음미하며, 그 쓴맛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듯, 우울한 감정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 중요하다.     


이제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끓이면서도, 그 향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찾는다. 우울증이라는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언젠가 큰 성취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커피의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마음속에 쌓여있던 불편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며칠 전 봤던 인터뷰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인터뷰에서 한 사람이 "우울증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믿기지 않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고, 그런데도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정말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우울증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고통을 숨기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견뎌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 관계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충격으로 회사에 한동안 출근하지 못했다. 출근하면 또 그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다. 그 공간 자체가 공포였다.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나를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회사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 공포의 순간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못했다. 마치 두 발이 시멘트 바닥에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CCTV도 없는 회의실. 그 사람과 나 둘 뿐인 공간이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우울증 진단서를 사무실에 우편으로 제출했지만. 기관장은 두 달을 모두 ‘무단결근’으로 처리했다. 졸지에 피해자인 나는 불성실한 직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아주 불량한 직원이니 ‘중징계’를 받게 하겠다고 되려 나를 압박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질병 휴직 기간 변론을 준비하기 위해서 썼다. 쉬는 게 쉬는 것도 아닌 나날을 이어갔다. 기관장은 내가 ‘중징계’를 받기를 원했겠지만, 아쉽게도 ‘견책’이라는 가벼운 징계가 나왔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변론하러 상급 기관에 갔다. 주심을 맡은 위원에게 처음 들었던 질문.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상상조차 못 할 일입니다. 진단서와 진료기록을 보니, 사람을 대면하기가 어렵다고 적혀있던데 오늘 변론을 하실 수 있는 컨디션인가요?’     


그동안의 억울했던 감정들이 모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정의는 살아있구나. 다행이다.     


동행했던 변호사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다들 징계위원회에 들어가서 너무 혼이 나서 울면서 시작해서 울다가 끝난다고 했다. 결과가 좋게 나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해주셨다.     

내가 느끼기에도 상급 기관 위원분들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주시는 게 보였다. 오히려 감사팀을 꾸짖었다.      


‘그런 성추행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했을 텐데, 다음 날 아침 본인의 컨디션을 미리 알고 사무실에 출근 못 하겠다고 전날에 알리는 게 가능할까요? 만약 본인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떠셨을까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상급 기관 인사위원장님이 정말 감사했다. 팀장은 내가 우울증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필요시’ 약을 얼마나 먹어가며 버텨왔는데. 내 모니터 밑에 수북하게 쌓인 약봉지를 보지도 아니,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성추행 사건으로 필요시 약을 먹어도 너무 불안해서 출근할 수 없었는데. 그런 사무실에서 ‘우는 얼굴’로 계속 앉아 있었어야 그래야 내 상태를 알아주겠다는 건지. 나는 너무 서글펐다….          

"넌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해보았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까지 일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기력과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증은 결코 한가한 사람들만 겪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버틴 생활이었는데. 내 신체 중요 부위를 만지면 귓속말로 ‘너, 내 말대로 일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로 날려 보낼 수가 있어!’라며 나를 협박한 그 사람으로 인해 가까스로 유지해 왔던 내 삶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망가졌다.      


아직도 그 변태는 자신이 전혀 그런 일을 나에게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타임슬립을 하고 싶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 ‘녹음’을 하고, ‘경찰’을 부를 것이다.      

워낙 작은 동네라 그 변태의 체면(?!)을 생각해서 나 혼자만 끙끙 앓다가 오히려 ‘징계’를 받고. 내가 너무 바보스러웠다. 두 번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또 한 번만 내게 접근하면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니까.     


이번 일로 인해서 오히려 사무실에서 내 입지는 강해졌다. 내 편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분들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정말 감사했다. 그래도 내가 인간관계는 잘해두었구나. 기특하다. 나.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정말 힘들었지?" 친구가 물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솔직하게 답했다. "응, 정말 많이 힘들었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학습된 무기력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거야. 그걸 인정하는 게 중요해."     


그 순간, 큰 위로를 받았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다. 우울증은 단순히 나태하거나 한가한 사람들이 겪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이었다.      


* 필자는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절대 가벼운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들었던 그 말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이해하고, 내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겪는 사람들이 결코 약하거나 게으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었다. 이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우울증,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과정들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때로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눈물은 나의 감정을 정화해 주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우울증을 겪는 많은 사람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고통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마지막 문장을 쓰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될 것이다. 우울증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받을 가치가 있어요."          


이 결심과 함께, 글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다시 한번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희망을 느꼈다. 우울증은 결코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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