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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온 Jun 05. 2024

시티뷰에서 일하고 컨트리뷰에 살기

대학교의 한 교양강의 시간에 사담을 나누던 때였다. 서로의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나는 “시티뷰에서 일하고, 컨트리뷰에서 잘래요.”라고 답변했다. 만약 대학교 졸업 후에도 내가 살아있다면 그냥 인적 드문 시골 마을로 들어가 해바라기 키우며, 일몰과 야경 바라보는 낙으로 지내고 싶다. 거실에 폭신한 토퍼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담요 하나, 바디필로우 인형 하나 두고 책 읽기. 새벽의 푸른빛이 집안을 가득 채울 때, 베란다로 나가 새벽공기 마시기. 그런 소박한 일상을 지내고자 한다. 그리고 가끔 심심해지는 저녁 때면 한 손에 스파클라 폭죽 들고 마당에 나가서 쭈그린 채 불꽃놀이나 해야지.


내가 이토록 시골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란스러운 것 없이 조용하고, 누군가의 시선과 평가에 시달릴 일도 없고,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잘 해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채 쉴 수 있다. 그래서 10대 후반부터는 방학 때마다 길면 보름 이상, 짧아도 일주일 정도는 경상남도 진주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 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윤재온의 충전 방식이다. 사람 안 만나고, 이불속에만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아무것도 안 하기.


 대부분 시골을 좋아한다 하면, 어렸을 때 농어촌이나 산골 생활을 했을 거라는 반응이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종종 내가 시골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아뇨? 저 도시에서 자랐어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러자, 어떻게 시골을 좋아할 수 있냐는 눈빛과 함께 “나는 콘크리트 벽이랑 아스팔트 도로 못 잃어.”라고 농담을 하는 대학 동기도 있었다. 심지어 나 홀로 시골집을 지킨다 하면, 외가 친인척들마저도 신기해하니 말 다했지. 하지만 나는 정말 시골이 좋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 선선히 불어와 머리카락을 간질거리는 바람. 고요함 속의 안정감. 너무 좋다.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은 현실의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함이다. 소란스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골로 들어서면, 그나마 덜 우울하고 불안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어쩌면 ‘윤재온에게 시골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골에서도 내가 살아야 하는 뚜렷한 목적이 생기지 않는다면, 곧 떠날 것이다. 왜냐고? 내가 지금 대학교를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나는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느끼는 공허감과 불안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한다. 내면의 불안은 어쩔 수 없지만, 외부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불안이라도 막으면 덜 고통스러우니까.


진주 시골 마을 안에서도, 내가 머무는 곳은 외할머니 댁.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요양병원과 도시의 집을 오고 가고 계심을 반복하여, 주로 비어 있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한다. 아마 나를 정수기와 이불, 베개와 무선 인터넷만 마련된 시골 집에 던져놓으면, 며칠이고 때깔 곱도록 잘 쉴 것이다. 아, 한여름이라면 에어컨도.

그래서 방학이 되고, 본가에서 할 일이 끝나면 기차 티켓을 예매한다. 그리고 시골로 가는 날. 28인치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마을의 입구에 도착해 또다시 한참을 걸으면 집이 나온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휴대폰과 TV 시청, 노트북 사용이나 독서 외에는 시간을 보낼 것이 마땅찮다. 그나마 우리 시골 집은 무선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고, 에어컨이 있어 다행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나도 아마 시골에서 오랜 기간 머물기는 힘들어 할 것이다.

하루는 거실의 이불 속에서 TV 프로그램을 돌려보다 그것마저 싫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 요리나 할까 고민하던 중, 창가로 보이는 붉은 노을이 무척 예뻤다. 그래서 산책이나 할까 싶어 밖을 나섰고,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의 슈퍼마켓까지 갔다.

일본 만화에 나올 법한 작은 구멍가게였는데, 거길 들어서자 폭죽과 비눗방울이 눈에 띄었다. 평소 가족끼리 휴가를 가거나, 캠핑을 갈 때도 종종 스파클라 폭죽을 사들고 가 나 홀로 불꽃놀이를 즐겼기에 폭죽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밤중, 밤하늘에 별이 흩뿌려지고 달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때에 밖으로 나왔다. 귓가에는 논밭의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잔잔히 들렸다. 마당에 쭈그리고 라이터로 폭죽에 불을 붙였다.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폭죽을 멍하니 바라보면 그 순간 잡념이 사라지고, 그간의 나를 되돌이켜 보며 반성하게 된다.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들 성실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항상 힘들다고 투정에 엄살인걸까. 괜스레 기죽기도 하고, 또다시 나를 질책하는 뫼비우스의 띠가 시작된다. 사실 전혀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아는데 말이다. 하지만 폭죽이 금방 꺼져 들어가듯, 내 생각 역시 그때만큼은 시간제한을 걸어놓은 것 마냥 불이 꺼지는 순간 끊어진다. 새 폭죽을 켜기 위해 생각을 바꿔서 그런가.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오늘도 실패한 인생이지만 나름 잘 버텼다. 값진 하루는 아니어도, 제법 좋은 빛을 보았다. 그리고 불꽃놀이가 끝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제의 잔해를 정리하고 빈 텃밭을 보면 생각한다. 방학 때가 아닌 평소에도 올 수 있다면 해바라기를 가득 심을텐데 아쉽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꽃 중에서 해바라기, 모란, 목련, 수국을 좋아해 왔다. 수수하지만 크고 화려한 꽃. 그중, 해바라기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화가인 고흐. 그도 해바라기를 좋아했으며,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인 헬렌켈러 또한, “Keep your face to the sunshine and you cannot see the shadow. It's what sunflowers do.”라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더더욱 해바라기에 대한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해바라기의 꽃말 중, ‘기다림’이 있다. 이 꽃말이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아주 뜨거운 태양을 맞이해야 하는 8월에 피어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알록달록한 단풍과 황금빛 논밭의 가을을 기다리는 해바라기처럼. 나 역시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어린 나에게 사과하고 화해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어쩌면, 더 이상 ‘편안’이 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내가 되지 않을까. 그 순간을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불안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편안은 쉽지 못했다. 그래, 결국에는 나도 편안해지려고 그랬던 것이다. 마음 속에서 매일 폭우와 폭풍에 휘몰리는 쪽보다는 고요해지는 쪽으로 가까워지려고 했던 것이고, 삶은 나에게 편안보다 불안에 가까운 의미였으니까. 그러니 시골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날의 기억과 감정이 모두 나쁜 의도와 결과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리울지도 모르지, 나의 몇 안 되는 내사람들과 내가 이룬 것들. 제법 길었던 시간이다. 좋았던 순간도 많았고 나빴던 순간도 많았지만, 나의 내면에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어린 ‘나’가 있다. 지금까진 타인과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어린 나는 뒷전이었기에, 이제는 어린 나를 챙겨주고자 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멀어지는 것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기로 했다. 시간은 나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고, 나는 벌써 그 시간을 아프게 살아버렸으니까. 애썼다, 고생했다. 오랜 시간의 나, 오랜 시간의 밤. 나의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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