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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Oct 03. 2024

상실의 시대

치매는 정말 슬픈 병이야. 기억을 잃어가는 건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 그 추억 속에 담긴 웃음, 눈물, 그리고 모든 순간들이 한 겹씩 벗겨져 가는 걸 바라보는 건,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아픔일 거야.

엄마가 어느 날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와의 시간을 잊어버린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들, 어린 시절 손을 잡고 걸었던 길, 함께한 웃음과 눈물들이 전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 상실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거야. 기억이라는 건 우리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끈 중 하나인데, 그 끈이 서서히 풀려간다면 나는 어디에 서야 할지,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모를 것 같아.

그렇지만, 치매는 단순히 기억만을 빼앗아가는 병이 아니야.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아 있는 감정과 사랑조차 지워버릴 수는 없어. 비록 엄마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분명 그 속에 남아 있을 거라고 믿어. 엄마의 마음속 깊은 곳,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사랑은 기억을 넘어서는 무언가로 남아 있지 않을까.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그 사랑을 기억할 거야. 그 기억을 내가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엄마를 위해 내가 기억해 줄게.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을 내가 대신 기억하고, 그 기억을 매일 새롭게 엄마에게 전해줄 거야. 엄마가 잊어버린 기억을 내가 다시 이야기해 주고, 그 순간을 우리 둘만의 새로운 추억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가 온다 해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할 거야.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 한, 우리의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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