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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Nov 17. 2024

엄마의 낡은 에코백。

흐려진 손잡이를 매만지다 보면 시간이 만져진다. 마트 로고가 희미해진 에코백 하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제삿날, 당신은 늘 그렇듯 아침 일찍 장을 보셨을 것이다. 장바구니에 담긴 식재료들이 무거워질수록 당신의 어깨는 가벼워졌으리라. 자식을 위해 고른 과일 하나, 반찬 하나에 실린 사랑의 무게를 누가 알까.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여니 그제서야 보인다. 당신의 주름진 손가락이, 허리 굽은 뒷모습이, 장보기에 지친 발걸음이. 투명 용기 속 반찬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더욱 선명해지는 당신의 일생. 한 점 complaint 없이 살아내신 그 시간들.

차가운 냉장고 바람 속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따뜻하다. 에코백은 낡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날마다 새롭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닳고 닳아 길이 난 일상의 흔적 속에서 가장 견고하게 빛나는 것.

할아버지는 가셨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낡은 에코백 속에, 냉장고 안 반찬통 속에, 그리고 내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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