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별들의 공명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별들의 언어를 들었다.
"양자 얽힘 계수가 일치해요. 강화도 고인돌과 DMZ 지하 시설의 공명 주파수가 10^-43초 단위까지 동기화되어 있습니다."
류진성의 목소리는 마치 정밀하게 조율된 기계처럼 차분했다. 그의 태블릿에는 두 지점을 잇는 양자 얽힘의 흐름이 시각화되어 있었다. 플랑크 시간 단위로 진동하는 미세한 파동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맥동했다.
"이것 좀 보세요!" 그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단순한 공명이 아니에요. 거의… 대화에 가까워요. 이 두 지점이 마치 무언가를 교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해월은 그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청동 거울을 매만졌다. 거울 표면의 나선형 문양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은은하게 빛났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나즈라가 처음 이 땅에 도착한 자리였죠. 그리고 DMZ의 지하 시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실험을 했던 곳…" 그녀는 멈칫하며 청동 거울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흔적은 이 땅의 '기(氣)'와 얽혀 있었어요. 나즈라가 남긴 공명석과 이 땅의 화강암층이 공명한 덕분이었죠. 우연이 아니에요. 그들은 이곳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하 벙커로 들어서는 순간, 서연이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서연씨!"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벽에 기댔다. "여기… 너무 시끄러워요. 뭔가가 머릿속에 들어오려는 것 같아요."
진해월이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공명석의 잔재 때문이에요. 서연 씨의 신경망이 나즈라의 양자장과 반응하고 있는 겁니다. 그녀의 뇌는 이미 재구성되고 있어요. 나즈라의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태로 변화하고 있는 거죠."
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공포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빛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바꾸고 있는 건가요?"
서윤희의 연구실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간과 나즈라의 교차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벽을 가득 채운 방정식들은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변형한 공식들과 의식의 양자역학적 모델, 그리고 "다중우주 통신 이론"이라고 이름 붙여진 방정식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그녀가 원하던 최종 지점이었어요." 진해월이 벽면의 방정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서윤희 박사는 강화도에서 발견한 11차원 좌표를 추적해 이곳에 왔죠. 나즈라의 기술을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믿었으니까."
나는 벽면을 살피다 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녀의 필체로 쓴 단순한 선언이었다. "완벽한 질서는 새로운 창조를 허락하지 않는다."
"중성자 펄서 GRO J1744-28의 좌표입니다."
류진성의 태블릿이 새로운 데이터를 시각화하며 깜빡였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 중성자별은 나즈라의 모성(母星)이 공전하던 별입니다. 펄서의 주기가 공명석의 기저 진동수와 완벽히 일치해요. 그들의 집단의식은 이 극한 환경 속에서 진화한 거죠."
서윤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들의 비극을 이해했어요.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모든 개체의 뇌파를 완벽하게 동기화했죠. 하지만…"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한 동기화는 새로운 사고를 허용하지 않아요. 감정도 예술도 사라졌죠. 그들은 거대한 컴퓨터가 되었지만, 문명은 서서히 멈춰버렸어요.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 이유예요."
"이제는 우리 차례예요."
윤태석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달랐다. 더 이상 차가운 감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즈라의 집단의식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어요. 우리의 혼돈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있죠."
강화도의 고인돌 앞에서 진해월이 청동 거울을 들고 서 있었다. 거울 표면의 나선형 문양은 공명석의 크리스탈 구조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의 기(氣)와 별들의 언어를 이어 왔어요. 무속의 공명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었죠. 나즈라가 이 땅을 선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서윤희가 고인돌 중심부에 공명석을 놓았다. 크리스탈 구조는 한반도의 지자기장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서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뇌파는 점점 나즈라의 양자장과 얽히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건 끝이 아니에요." 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시작이에요."
양자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고인돌 주변의 시공간이 흔들렸다. 별들이 쏟아지고, 시뮬레이션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이제 나즈라의 집단의식이 우리와 함께 공진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은 파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었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별들의 언어를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