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할머니의 기도처럼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할머니는 항상 새벽에 기도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땅 밑에서 울리는 물소리처럼 깊고 아득했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자랐다. DMZ의 지하도시에 들어서며, 나는 문득 그 새벽의 기도 소리를 다시 듣는다.
축축한 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할머니의 염주 소리처럼 울린다. 어머니의 일기장이 무겁다. 그 속의 마른 진달래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의 무게를 품고 있다. 센서를 달기 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서로의 온기를, 눈물을,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을.
"할머니는 알고 계셨어."
진해월의 목소리가 깊다. 그녀의 손에 든 염주가 달빛처럼 은은히 빛난다.
"과학이 발견하기도 전에, 우리의 무속은 이미 알고 있었지. 이 땅의 고통과 자유가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지를."
강화도의 고인돌 아래에서 발견한 첫 번째 공명석. 그것은 단순한 과학의 산물이 아니었다. 할머니 세대의 기도가, 어머니 세대의 연구가, 그리고 우리 세대의 저항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자각의 시작이었다.
서연의 손이 내 손을 찾는다. 그녀의 손바닥에 새겨진 상처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나즈라의 통제에서 벗어난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껴안고 있다.
"하진아..."
서윤희의 목소리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연구실 벽면의 사진들이 침묵 속에서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들이 발견한 진실들, 그리고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해 치른 대가들까지.
DMZ 지하 연구소의 가장 깊은 곳. 이곳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다. 이곳은 우리의 모든 기억이 모이는 곳이다. 할머니의 기도문자와 어머니의 연구 기록이 만나는 곳. 과학과 신앙이, 이성과 직관이 하나가 되는 곳.
"보세요."
서윤희가 마지막 문을 연다. 그곳에는 나즈라보다 더 오래된 존재들의 흔적이 있다. 우리의 무의식이 그려온 우주 지도, 그것은 시뮬레이션의 벽을 넘어서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가 떨린다.
'아들아, 우리의 불완전함은 끝이 아니란다. 그것은 시작이야. 할머니의 기도가 그랬듯, 우리의 저항도 언젠가는 꽃이 될 거야.'
지하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마침내 그것을 발견한다. 나즈라조차 두려워했던 진실을. 이 우주는 결코 하나의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무수한 기도와 저항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서연의 손이 따뜻하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많은 빛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것은 더 이상 나즈라의 차가운 푸른빛이 아니다. 할머니의 기도처럼, 어머니의 사랑처럼 따뜻한 우리만의 빛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진정한 저항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완벽한 승리가 아닌, 불완전한 사랑을 지키는 것. 할머니가 그랬듯, 어머니가 그랬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자유를 끝까지 지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