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의식의 거울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푸른 새벽빛이 강화도 연구소의 마지막 공간을 적셨다. B-23 실험실, 어머니와 서윤희가 마지막으로 나즈라의 본질을 깨달았던 곳이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벽에 붙은 사진들을 흔들었다.
첫 번째 사진. 20년 전 공명석 발굴 현장. 어머니와 서윤희, 그리고 젊은 윤태석이 고인돌 앞에 서 있다. 두 번째 사진. 제주도 성산일출봉 지하 동굴에서 발견된 또 다른 공명석. 그리고 세 번째 사진. 진해월이 들고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표면에는 나선형으로 새겨진 무늬가 있다. 공명석의 패턴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어요."
서연이 사진들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그녀의 관자놀이 흉터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즈라가 오기 훨씬 전부터, 이 땅의 무당들은 공명의 비밀을 알고 있었죠. 그들은 이것을 통제가 아닌 해방의 도구로 사용했어요."
나는 어머니의 일기장을 펼쳤다. 첫 페이지의 날짜는 내가 태어난 해였다.
'오늘 진해월을 만났다. 그녀는 공명석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거울이라고. 우리의 의식이 비춰지는 거울. 나즈라는 이 거울을 통해 우리를 통제하려 했지만, 거울은 언제나 진실을 비춘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일기는 계속되었다.
'윤태석은 나즈라의 완벽함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서윤희는 달랐다. 그녀는 처음부터 알았다. 완벽한 통제 속에서는 진정한 의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제주도... 그곳에 숨겨진 마지막 비밀이...'
"류진성 씨의 연락이군요."
서연이 통신기를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에서 류진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산일출봉 지하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김선주 박사님이... 그녀가 마지막 공명석을 활성화시켰어요. 그리고 우리는 보았습니다. 나즈라가 이 땅에 온 진짜 이유를."
서연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나즈라의 집단의식이 남아있었다. 완벽한 통제를 꿈꾸었던 그들의 마지막 순간들.
"나즈라는 거짓말을 했어요." 서연이 천천히 말했다.
"그들은 우리를 진화시키려 온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찾으러 온 거였죠. 완벽한 통제 속에서 그들은 영혼을 잃었어요. 인간의 불완전한 의식 속에서 그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거예요."
나는 할머니의 염주를 꺼냈다. 구슬 하나하나가 달빛처럼 은은히 빛났다.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죠. 우리 영혼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나즈라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거울을 깨뜨리고 통제하려 했지만..."
"그래서 그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어요."
서연이 말을 이었다.
"진정한 의식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은 마치 물처럼 흘러가고, 바람처럼 자유로워요. 서윤희 선배님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도 바로 그거였죠."
창 밖으로 해가 떴다. 나즈라의 방주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일 것이다.
어머니의 일기장 마지막 장에는 작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성산일출봉 지하 동굴의 약도였다. 그 옆에 어머니의 마지막 메모가 적혀있었다.
'하진아, 이제 너는 선택해야 한다. 나즈라가 우리에게 보여준 완벽한 질서, 그리고 우리 안에 흐르는 혼돈스러운 자유.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구원일까. 하지만 기억하거라. 거울은 언제나 진실을 비춘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서연의 손이 내 손을 찾았다. 그녀의 체온이 전해졌다. 우리는 이제 제주도로 향할 것이다. 성산일출봉의 지하에서, 우리는 마지막 거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즈라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것. 그래서 완전하다는 것.
우리가 혼돈스럽다는 것. 그래서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 그래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차갑고도 따뜻한 바람이.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바람 결에 실려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거란다. 거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