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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이해의 시작 (1781년)

SF사극 《시간을 품은 달》

by 엄태용

겨울 창덕궁은 고요했다. 눈이 내려앉았다. 처마 끝에, 돌계단에, 궁궐의 모든 모서리에.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정조는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벽면을 타고 일렁였다. 손에 든 편지가 떨렸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홍국영이 죽었다.

서른넷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편지를 내려놓았다.

손이 차가웠다.

온몸이 차가웠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얼어붙었다.


홍국영. 때로는 가장 가까운 신하였고, 때로는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였던. 권력을 탐했지만, 동시에 자신을 도운 자였던. 그가 없어졌다. 정조는 창을 바라보았다.


눈송이가 유리창에 달라붙었다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전하."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깊고 낮은, 금속성이 감도는 음성.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에서 미묘한 따뜻함을 느꼈다. 율이 서 있었다. 은빛 갑옷이 촛불에 반짝였다. 그의 눈동자가 정조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 속에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홍국영이 죽었구나."정조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렇습니다."율은 한 걸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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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로 '영상화'를 목표로 사람과의 유대감이 담긴 'SF소설'을 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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