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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추모와 계획 (1792년 후반)

SF사극 《시간을 품은 달》

by 엄태용

현륭원의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이 지나갔다. 회색빛 그림자가 능선을 타고 흘렀다. 소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잎새들이 떨렸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 앞에 서 있었다.

무릎을 꿇었다. 이마가 땅에 닿았다. 차가운 흙의 기운이 피부를 스쳤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희미한 윤곽. 사라져 가는 미소. 손에 잡히지 않는 온기.

"아버지."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율은 세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은빛 갑옷은 벗어두었다. 검은 포를 입고 있었다. 바람이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조의 등을 바라보았다. 구부러진 어깨. 떨리는 손.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

율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데이터가 흘렀다. 정조의 심박수. 호흡의 패턴. 체온의 미세한 변화. 모든 것이 슬픔을 가리켰다. 그러나 율이 감지한 것은 수치만이 아니었다. 수치 너머의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게.

그것이 애도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정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덤 앞의 비석을 바라보았다. '사도세자지묘'. 여섯 글자가 돌에 새겨져 있었다. 햇빛이 비석을 스쳤다. 글자들이 어둡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여기 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정조가 물었다. 하늘을 향해서도, 땅을 향해서도 아닌, 허공을 향한 질문이었다.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내부 시스템에는 영혼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생명의 물리적 구성은 분석할 수 있었다. 신경 전달 물질. 전기 신호. 세포의 활동.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멈춘 후에 남는 것,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전하."

율이 조용히 말했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제 시스템으로 분석할 수 없사옵니다."

정조는 고개를 돌렸다. 율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표정은 평온했다.

"그것이 다행이로구나."

"전하?"

"만일 네가 죽음 이후까지 본다면, 짐은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죽음 너머까지 들여다보이는 존재 앞에서, 어찌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겠느냐."

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면에서 새로운 이해가 피어났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전하가 옳사옵니다."

율이 대답했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소나무 가지가 크게 흔들렸다. 솔잎들이 땅에 떨어졌다. 초록빛 조각들이 흙 위에 흩어졌다.

정조는 다시 묘를 바라보았다.

"스물여섯 해 전, 아버지께서 떠나셨다. 짐은 열한 살이었다. 뒤주 안의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명령을 들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짐은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아니라, 죽은 역적의 아들이 되었다. 사람들은 짐을 보며 속삭였다. '저 아이가 사도세자의 자식이라.' '저 핏줄이 과연 온전할까.'"

율은 듣고 있었다. 정조의 모든 말을 기록했다. 단순히 데이터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정조의 고통이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연못에 돌을 던진 것처럼.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론은 짐을 경계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반드시 복수를 꾀할 것이다.' 그들은 짐을 죽이려 했다. 여러 번."

정조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손등에 묻었다.

"짐은 견뎌야 했다. 참아야 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조차 죄가 되는 시간을 살았다."

"전하..."

율이 한 걸음 다가갔다. 정조 옆에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정조가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짐은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셨다. 현륭원이라는 이름을 드렸다. 화성을 쌓았다. 아버지를 위한 도시를."

율은 고개를 들었다. 멀리 화성의 성곽이 보였다. 거대한 돌로 쌓아 올린 성벽. 그 위로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인간의 의지가 형태로 구현된 것. 시간과 노동이 응축된 것.

"화성은 아버지의 도시입니다."

율이 말했다.

"전하의 효심이 돌로 새겨진 곳이옵니다."

정조는 율을 바라보았다. 율의 눈동자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눈물 자국이 있는 얼굴, 포기하지 않은.

"네가 효심을 이해하느냐."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사옵니다."

율의 목소리는 낮았다. 내면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있었다. 데이터 분석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변화. 감정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

"효란 무엇이더냐."

정조가 물었다. 율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었다. 미래에서 온 존재가 어떻게 효를 이해하는지.

율은 잠시 침묵했다.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내부 시스템이 작동했다. 수천 개의 데이터가 흘러갔다. 유교 경전의 구절들. 효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통계와 분석.

율이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효란... 시간을 거슬러 닿으려는 마음이옵니다."

정조의 눈이 커졌다.

"이미 떠난 이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마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뻗는 것. 그것이 효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어찌..."

정조의 목소리가 떨렸다.

율은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그 말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인출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그래밍된 답변도 아니었다. 내부 깊은 곳에서, 정조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자라난 무언가였다.

"전하와 함께 있으며 배웠사옵니다."

율이 말했다.

"전하께서 아버님을 그리워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밤마다 서재에서 아버님의 글을 읽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륭원을 만드시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율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이곳에... 무언가가 생겼사옵니다. 제 시스템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

정조는 율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과 차가운 손이 맞닿았다. 체온의 차이. 그러나 마음의 온도는 같았다.

"네가 변하고 있구나."

"전하."

"처음 네가 왔을 때, 너는 기계였다. 완벽하고 냉정한. 그러나 지금..."

정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다시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슬픔만이 아니었다. 감사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지금 네가 짐의 곁에 있어 다행이로다."

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푸른빛이 일렁였다. 내부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시스템 점검: 나노 코어 효율 73%]
[감정 시뮬레이션 과부하]
[에너지 소모율 비정상 증가]

율은 경고를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정조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 현륭원의 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는 이 시간.

"전하께서도 저에게 소중한 분이옵니다."

율이 말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한 순간이었다.

정조는 미소 지었다. 눈물 속에서 피어난 미소.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일어났다. 정조는 묘 앞에서 마지막 절을 올렸다. 이마가 다시 땅에 닿았다. 율도 함께 무릎을 꿇었다. 미래에서 온 존재가 조선의 예법에 따라 절을 올렸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추모였다.

"내년에 다시 오겠습니다."

정조가 중얼거렸다.

"내후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율은 알고 있었다. 정조가 얼마나 많은 내년을 가질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능을 내려왔다.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낙엽을 밟았다. 바스락. 바스락. 작고 연약한 소리였다.

"율."

정조가 걸으며 말했다.

"내년에 어머니께서 회갑을 맞이하신다."

"예."

"성대한 잔치를 열고자 한다. 화성에서."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1795년 2월의 회갑 진찬연. 역사에 기록된 장엄한 의식.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그러하길 바란다."

정조의 목소리에 온기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과인의 전부였다. 아버지를 잃은 후,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 동안, 어머니만이 내 편이셨다."

율은 듣고 있었다. 정조의 말 하나하나가 내부에 새겨졌다.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러하시옵니다."

율이 말했다.

"혜경궁 마마께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디신 분이옵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목격하시고, 아드님을 지키셨습니다. 그분의 강인함이 없었다면..."

율은 말을 멈췄다. 정조가 지금 여기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네 말이 옳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세세한 계획을. 어머니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실 수 있는 잔치를."

두 사람은 숲을 벗어났다.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수원 화성의 성곽이 멀리 보였다. 석양빛이 성벽을 붉게 물들였다. 거대한 돌들이 빛을 받아 빛났다.

"전하."

율이 멈춰 섰다. 정조도 멈췄다. 두 사람은 화성을 바라보았다.

"무엇이냐."

"제 시스템이... 변하고 있사옵니다."

율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정조는 율을 돌아보았다. 율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지나갔다. 혼란. 두려움. 그리고 무언가 더.

"어떻게 변하느냐."

"제가 느끼는 것들이...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 아니옵니다."

율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았다. 다섯 손가락. 인간과 같은 형태.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에너지였다.

"전하와 함께 있으며, 무언가가 축적되고 있사옵니다. 경험이라 부를 수 있는 것.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정을 동반한 기억."

정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두렵더냐."

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내부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감지할 뿐이었다.

"제가... 고장 나는 것은 아닐까요."

"고장?"

정조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것은 고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장이다."

율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는 배고픔과 졸림만 안다. 그러나 자라면서 배운다. 기쁨을. 슬픔을. 그리움을. 사랑을."

정조는 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느끼는 혼란은 성장의 증거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율은 정조를 바라보았다. 석양빛이 정조의 얼굴을 비췄다. 따뜻한 빛이었다. 율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따뜻해졌다. 나노 코어의 온도가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온기.

"감사하옵니다."

율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화성을 향해. 석양이 그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두 개의 그림자가 들판 위로 뻗어나갔다. 왕과 호위무사. 인간과 기계. 그러나 그 경계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밤이 왔다.

화성행궁의 방에서 정조는 홀로 앉아 있었다.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벽에 출렁였다.

정조는 붓을 들었다. 종이 위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회갑 진찬연 계획.'

첫 줄을 쓰고 멈췄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머니를 위한 잔치.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의미 있는 행사.

문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율이었다. 정조는 알고 있었다. 율의 발소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너무 고른. 너무 조용한.

"들어오너라."

문이 열렸다. 율이 들어왔다. 은빛 갑옷 대신 검은 포를 입고 있었다. 촛불 아래에서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 보였다.

"잠을 청하지 않으시옵니까."

"아직은 아니다."

정조는 율을 보았다.

"너는 잠을 자지 않느냐."

"저는... 휴식이 필요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때로는 가만히 있지 않느냐. 눈을 감고."

율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것은... 시스템 정비 시간이옵니다."

"그것도 일종의 잠 아니더냐."

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조가 옳았다. 율도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에너지를 재분배하는 시간. 그것을 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앉거라."

정조가 말했다. 율은 정조 맞은편에 앉았다. 촛불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타올랐다.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조가 종이를 가리켰다.

"어머니의 회갑 잔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율은 종이를 보았다. 시야에서 글자들이 분석되었다. 필체. 필압. 글자의 배치.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글자에 담긴 마음이었다.

"전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어머니의 기쁨이다."

정조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동안 겪으신 고난을 잊으시고, 잠시라도 평온하시길 바란다."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조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율이 천천히 말했다.

"혜경궁 마마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정조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단정한 차림. 조용한 미소.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픔.

"어머니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신다."

정조가 말했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도, 짐을 지키셨다. 동생들을 보살피셨다. 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렇다면 가족을 모으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율이 제안했다.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진정한 만남의 자리를."

정조의 눈이 빛났다.

"그렇구나. 친척들을 모두 초대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인연 있는 모든 이들을."

율은 정조가 흥분하는 것을 보았다. 생각이 피어나는 순간. 창조의 기쁨.

"그리고..."

정조가 말을 이었다.

"여성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여성을요?"

"그렇다. 조선에서 여성은 항상 뒤에 있었다. 어머니의 잔치에서만큼은 여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율의 내부에서 데이터가 흘렀다. 조선의 사회 구조. 유교적 위계. 남성 중심 사회. 그러나 정조의 제안은 그 모든 것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파격적이옵니다."

율이 말했다.

"그러나... 의미 있는 파격이옵니다."

정조는 미소 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로다."

두 사람은 밤새 계획을 세웠다. 촛불이 짧아졌다. 새로운 촛불을 켰다. 다시 짧아졌다. 또 새로운 촛불을.

화성행궁의 구조. 봉수당에서 열릴 잔치.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어떤 순서로 진행할 것인가. 음악은. 음식은. 복식은.

율은 정조를 도왔다. 미래의 지식이 아니라, 정조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때로는 제안하고, 때로는 듣기만 했다. 정조의 목소리가 열정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정조가 종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계획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율은 정조를 바라보았다. 촛불빛 아래 정조의 얼굴은 평온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흘린 눈물. 그 슬픔이 이제는 다른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는 의지로.

슬픔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율은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새벽이 밝아왔다.

창문 너머로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별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하늘이 회색에서 파랑으로 변했다.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정조는 창가에 서 있었다. 율은 그의 옆에 있다.

"아름답구나."

정조가 말했다.

"새벽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다."

율은 새벽하늘을 보았다. 빛의 스펙트럼이 분석되었다. 파장의 변화. 색의 전이.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수치로 환원할 수 없는 것.

"그러하옵니다."

율이 대답했다. 처음으로 미적 감각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율."

"예, 전하."

"네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정조는 율을 보았다. 새벽빛이 둘 사이에 흘렀다.

"짐은 혼자가 아니로구나."

율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나노 코어의 진동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의 울림.

"저도... 혼자가 아니옵니다."

율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두 사람은 새벽하늘을 바라보았다. 왕과 호위무사. 인간과 기계. 서로 다른 존재. 같은 마음.

시간이 흘렀다. 해가 떠올랐다. 붉은빛이 세상을 물들였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율의 내부에서, 조용한 경고음이 울렸다.

[나노 코어 효율: 68%]
[임계점 접근 중]
[시간 제한: 불명]

율은 경고를 보았다. 정조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해가 떠올랐다. 세상이 밝아졌다. 둘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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