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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Apr 25. 2024

영화인에서 공무원으로

취미가 업이 되니 또다른 시련이

집은 재정적으로 넉넉한 편이지?”     


대학교에서 방송 기술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한 첫 영화 프로덕션. 면접장에서 대표님에게 받은 질문이었다.

      

‘왜 저런 질문을 하지? 집이랑 무슨 상관인데.’ 속으로 당황스러웠다.

훗날 그 질문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갓 졸업한 꿈 많은 영상학도는 무서울 게 없었다.

그저 싱거운 ‘아재 개그’ 정도로 넘어갔다.


처음 맡은 일은 원화부에서 넘어온 이미지를 영상편집 프로그램으로 이어 붙여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소름 돋았다. 7살 때 TV에서 만화영화를 볼 때면 늘 궁금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렇게 생생한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것인가.

당돌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직접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만화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린아이의 질문이 대견하다는 듯이 방송국 직원은 친절하게 답변해 줬다.     


“1초에 24프레임의 사진이 연결되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정지된 사진이 1초에 24장이 연속으로 이어지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눈에 보여요. 이해되나요?”     


일곱 살이었던 나는 프레임이 뭔지 잘 이해는 안되었지만 방송국 직원의 말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른이 되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왔다니.

 

꿈만 같았다. 꿈이 현실이 된 게 믿기지 않은 나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야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일주일에 2번은 집에 못 갔다.

그리고 운이 좋아 집에 갈 수 있덨 날도 밤샘 편집을 마치고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오전 7시였다.


나와 걸어가는 방향이 달랐던 사람들.
아침에 '퇴근'을 하는 나, 아침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대충 씻고 오전 10시 30분까지 출근.  

신생 프로덕션이라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


선배들을 보니 신용카드 5~6개를 돌려막기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게 보였다.

하긴 월급이 2~3달에 한 번씩 들어왔으니까.

대표님도 많이 힘드셨겠지.

직원들 월급을 일부러 주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닐 터.

애써 위로해 보지만 밥을 사비로 사서 먹는 심정은 비참했다.

야근을 해도 수당은 꿈꿀 수도 없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일명, ‘열정페이’라고 하던가.



      

좋아하던 영상편집이 '업'()이 되니 처음의 뜨거웠던 열정도 점점 미지근하게 식어갔다.

월급이라도 제대로 나왔으면 또 모르겠지만,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것일지 하는 의구심만 커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 체력을 갈아 넣어 회사 일을 해나갔다.      


어느 날 부모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태용아, 네가 전공을 살려서 취업한 건 정말 좋았어. 하지만, 월급도 밀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네 건강이 걱정된단다. 그렇게 야근을 매일 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갈 수도 있고. 혹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 수험 비용 정도는 아빠가 지원해 줄 수 있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꿈과 현실의 온도차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달랐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터라 거절할 수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부모님이 다짜고짜 ‘넌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면 난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정페이는 너무 가혹했고, 내 체력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고갈되었다.     




대표님이 면접 때 하셨던 질문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예술은 돈인 것'을.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만화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네로’가 좋아하던 그림 그리는 게 왜그렇게 힘들었는지 몸소 깨달았던 나의 27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난 그렇게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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