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태용 Apr 30. 2024

'겁나 험한 것'이 내 속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주민자치회 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간사라고 불리는 그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혼자 있었고 CCTV도 없던 회의실. 그 사람은 대뜸 내 신체 중요 부위를 손으로 움켜잡으며 귓속말했다.   

   

“너,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시키는 대로 일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로 날려버릴 거야!”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자리에서 발바닥이 시멘트에 굳어버린 것처럼 얼어붙었다. 경찰 신고 따위는 당연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사사건건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그 민원인은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주민자치회 운영을 위해 협조를 잘해주는 편도 아니었다. 간사가 해야 할 일들은 전부 나에게 등 떠밀기 일쑤였다. 워낙 동네가 작은 시골이라 ‘평판’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 부탁, 아니 그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방직 공무원이 이렇게 ‘을’ 중의 ‘을’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는 공무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티브이에서 왜 자살한 공무원들이 자주 나오는지 몸소 체험하는 나날들이었다. 비닐봉지를 쓰고 죽을까도 싶어서 자살 시도를 3번이나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혼자 남을 아내를 생각하면 죽는 것도 힘들었다.

정신적 충격으로 회사에 '당분간 출근할 수 없다는 뜻'을 알리고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상태가 의사가 보기에도 매우 불안정해 보였나 보다. 진정제를 투약받았고,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진단명은 F코드에 해당하는 ‘중증 우울증’ 및 ‘공황장애’였다. 하지만 기관장은 마음의 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가 보다. 출근 못 한 날을 전부 ‘무단결근’ 처리를 하고 ‘중징계위원회’에 부쳤다고 되려 환자인 나를 압박했다.


인생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일주일을 침대에 누워서만 보냈다. 그러던 중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으면 나만 손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치유하는 시간.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와의 조우.

회사에서 쳇바퀴 굴러가는 삶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서적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갑질로, 성추행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의 모든 ‘을’들을 대표해서 활동하고 싶다. 더 행복하고, 더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내 몸속에 들어온 겁나게 험한 것은, 단순히 치졸한 복수가 아닌, '더 나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내려는 용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가에 핀 잡초처럼 살아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