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원에 간 오후, 도서관에 갔다. 나는 네모란 백팩에 반납할 책을 가득 넣고,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운동화를 신고서 집을 나섰다. 수목공원으로 연결된 아파트 후문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작은 도서관이 있다. 매번 백팩의 무게를 느끼며 '오늘은 네 권쯤만 빌리자' 생각하지만, 돌아오는 가방은 무겁기 일쑤이다. 오늘은 김영진 작가님의 그림책 세 권을 포함해서 여덟 권을 빌렸다. 아이들이 잘 읽어주기만 한다면 이쯤이야 그럭저럭 들만했다.
집에 와서 보니, 다른 도서관에도 내일까지 가져다 춰야 할 책이 있었다. 백팩의 책들을 꺼내고, 반납할 책을 넣었다. 이 도서관은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따라 여름같이 더웠다. 그리고 돌아오는 내 등의 백팩에는 11권이 들어있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갈수록 가방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좀 덜 빌렸으면 편했을 것을 책만 보면 욕심이 생기는 탓이다. 여러 번 오가느니 한 번에 무겁고 말자는 게으름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미련함 덕에 돌아오는 길은 다소 힘들었다.
내가 책 욕심이 있는 편인 것은 맞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항상 책에 목말라있었다. 나는 밥상머리에서 길에서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책을 읽다가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열정에 비해 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살던 시에는 도서관이 하나뿐이었고 내가 혼자 가기에는 멀었다. 가정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마음껏 책을 살 수도 없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동네서점에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살 테니 평소에 아이가 와서 책을 읽게 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했다. 나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작은 서점으로 갔다. 구석의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에 앉아 한참씩 책을 읽었다. 판매하는 책이 접히거나 더러워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집에 가면서는 속으로 '124페이지. 내일은 124페이지부터' 외우면서 돌아가기도 했다. 당시에 엄마는 속옷가게를 하셨는데, 가끔 엄마가 없는 새 가게를 보고 있으면 손님이 오셨다가 "서점 집 딸이 왜 속옷 집을 보고 있어?" 묻기도 했다. 매일 서점에 있는 계집애가 서점 집 딸이겠거니 했던 거다. 나는 "저 이 집 딸이에요." 대답하곤 했다. 그때는 그렇게 읽어도 읽어도 책이 고팠다. 세계명작 전집이 있다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세계 명작 전집을 사줄 형편이 되고, 아이와 서점에 가면 매번 책을 사준다. 집 근처에는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세 군데 있는데, 한 달에 50~100권씩은 빌려오는 듯하다. 거실 한편 책들을 쌓아두면 아이들은 틈틈이 책을 읽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한다. 어릴 적 집 근처에 도서관 한 개만 있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아이들이 부럽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책 한 권 한 권이 그리도 간절했기에 더 즐거웠을까 싶기도 하다.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오늘에 나는 책을 잘 읽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라며 나는 열심히 책을 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