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은 매일 단어 시험을 본다. 월요일에 30개 수요일에 30개 영어를 읽고 한글 뜻을 적는 시험을 보는데, 금요일에는 지난 60개의 뜻을 읽고 영어 스펠링을 적는 식으로 시험을 본다. 30개 중에서 절반쯤은 예전에 배운 단어인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는 일주일에 30개 정도를 외우는 셈이다. 그렇게 5주를 보낸 후엔, 5주간의 총단어를 다시 시험 본다. 같은 단어를 세 번씩 암기하고 시험 보면서, 계속 복습하게 되는 셈이라 꽤 괜찮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아이 공부를 봐주다 보면 종종 대학시절의 교육학 수업이 생각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학습 후 10분이 지난 순간부터 공부한 내용을 잊기 시작하는데, 하루가 지나면 약 70%를 잊는다. 열심히 수업에 집중한들, 죽어라 단어를 외운 들 다음날이면 약 30%만 남는다니 김 빠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닌데 난 그것보다는 더 많이 기억했는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복습의 힘이었을 것이다. 막 요점정리를 다시 하고 달달 외우고 정도가 아니더라도, 학습한 내용을 반복해 읽는 것만으로도 망각을 늦출 수 있다. 수업이 끝난 직후에 한번, 하루 뒤에 한 번, 일주일 뒤에 한번, 한 달 후에 한 번... 이런 식으로 복습하면 대부분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론적인 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아무튼 반복학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5학년 아들을 앞에 앉혀두고 <망각곡선>을 그리며 설명해준 적이 있다.
"이러이러한 이야기야. 그러니까 매일 잠깐이라도 복습하는 것이 효과가 있고 중요하단 거지. 영어 단어도 안 외워진다고 짜증 내지 말고 매일 한두 번이라도 읽어보자."
"나 외우는데."
"월요일에 한글 뜻만 시험 본다고 해서, 선생님이 한글 뜻만 외우라는 것은 아닐 거야. 이때부터 스펠링을 외우기 시작하면, 금요일이나 총단어 시험 때 훨씬 수월해 질 거란 얘기야."
"알았어."
대답만 하고서 십 분 만에 다 외웠다며 가방에 단어장을 집어넣는다. 십 분 만에 뜻이라도 외운 것이 용타지만, 벼락치기는 벼락같이 잊히기 나름이다. 결국 금요일 스펠링 시험을 앞두고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엄마 나는 바보인가 봐. 모르겠어."
"너는 바보가 아니야. 제대로 외운 적이 없는데 외워져 있는 게 이상할 노릇 아니겠어? 난 똑똑하게 낳아줬는데 그 머리를 좀 굴려보자. 엄마가 월요일부터 스펠링 좀 외우랬잖아."
그나마 스펠링 시험을 앞두고는 30분을 외운다. 시험은 또 거의 맞아서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다 맞았다. 하하하."
그러나 30분 동안 외운 스펠링은 절반쯤은 잊어진다. 그리고 그 후론 다신 쳐다보지 않는다. 그리고 총단어시험을 앞둔 전날에는 또 징징대기 시작한다.
"단어가 너무 많아. 모르겠어. 어려워. 너무 많다고."
"당연히 많지. 오늘 하루 외우란 것이 아니고 5주 동안 외우라는 거니까, 지금은 복습하는 시간이지 처음처럼 암기하는 시간이 아니야. 다음에는 제발 첫날부터 스펠링을 외우기 시작하면 안 될까. 그리고 시험 본 후에도 한 번이라도 다시 읽어보고 "
이번에는 징징거리며 한 시간이 넘게 단어를 외운다.
오늘은 주말 내내 놀다가 밤에야 총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단어를 외우다가 혼자 테스트를 한 후 내게 채점해달라더니, 자기는 TV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를 봤다. 계속 보고 싶은 걸 참고 공부한 걸 알기에 모른척하고 천천히 채점을 했다. 채점해보니 틀린 단어가 꽤 많아서 한 번 더 읽어보라니 졸리다며 침대로 들어가 버렸다. 알아서 하라고 쏘아붙이고선 둘째를 재우러 와서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조금씩 학습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줘야 한다는데, 무엇이 맞는 것일까. 알아서 하라고 주도권을 줘야 하는 건지, 혼내고 잔소리를 해가며 억지로라도 시켜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간섭을 했으니 물러날 때가 된 건지. 답을 찾기 쉽지 않다. 교육학을 배웠던든 5학년 학부모는 처음이라, 아이들은 모두 다른 존재라 무엇이 최적의 교육인지 찾아가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밖에서 들리는 TV 소리에도 꾹 참고 한 시간이 넘게 공부한 아이에게 구박의 말만 던진 것 같아서 미안해진다. 오늘은 서로 인상 쓰고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내일은 밝은 얼굴로 오늘도 힘차게 지내자고 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