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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Mar 29. 2022

애매하게 튀는 사람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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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오랜만에 쇼핑몰에 다녀왔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면 옷을 구경하러 가곤 한다. 큰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이번에는 이런 옷이 유행인가 보구나 짐작이 돼서 재미있다. 작년보다 성근 느낌의 크로셰 니트가 많이 보여 반가웠다. 유행하는 덕에 여러 가지 디자인이 나와주면 내 맘에 드는 걸 하나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긴다. 브라톱이 여기저기 걸려있어, 요즘 애들 이걸 입는 건가 의아함이 기도 했. 젊은 애들이 많은 거리에 가본 지 오래라 감이 오지 않는다. 15년 전 내가 홀터넥 블라우스 입고 나가도 친구들은 내게 용감하다 했는데, 브라톱이라니 요즘 아이들의 과감함엔 대할 바가 아니.


  종종 나는 '튄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옷장의 2/3가 검정과 회색인 내가 튄다니 의아했지만, 나는 적어도 동네 놀이터 세계에서는 튀는 존재였나 보다.

  "언니, 나 언니랑 알기 전부터 언니를 알았잖아~"

  "그게 뭔 소리야?"

  "놀이터에 어떤 엄마가 그제는 오프숄더 원피스, 어제는 청바지에 홀터넥 티, 오늘은 롱 원피스에 큰 귀걸이... 언니 엄청 튀었다고."

  "그래? 흐흐흐 이상한 사람인가 했어?"

  "아니 난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고마워."


  나도 장례식장엔 검은 옷을, 학교 상담을 갈 때는 단정한 옷을, 캠핑을 갈 때는 편한 옷을 입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그냥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특별히 튀는 옷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맘에 들면 다소 튀더라도 구입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홀터넥이나 오프숄더 원피스를 즐겨 입는데, 그게 동네 엄마들에겐 꽤나 관심거리였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그래서 요 근래 이 디자인들이 유행했을 때는 반가웠다. 가 덜 튀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애매하게 튀는 사람이 아닌가. 동네 아줌마들은 나를 '튄다'라고 하지만, 무채색 옷을 선호하고 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옷을 잘 입는 패션 리더들에 비한다면 딱히 패셔너블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좋아하는 옷을 입을 뿐이다. 주로 검은 티에 청바지를 입지만, 다홍색 홀터넥 원피스를 입는 날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튀는 날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튀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안 튀는 날도 많다. 나는 그저  눈에 예쁘고 내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 나는 민 내가 좋은 사람일 뿐이다.


  종종 지인의 옷을 골라준다. 평소와 조금 다른 스타일을 권해주면 조심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자수가 들어간 원피스는 조금 튀지 않아?"

  "아니야, 너한테 어울려. 예쁜데?"

  "이걸 어디에 입고가?"

  "등원 버스 기다릴 때도 입고, 놀이터 갈 때도 입어. 뭐 어때? 노출이 심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옷도 아니고... 예쁘기만 한데. 신경 쓰이면 안에 반바지를 입어."

  "그럴까? 나 사실 이거 맘에 드는데."

  "그럼 사. 예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신경 써 옷을 입던 사람도 가정주부로 살면서는 수수하게만 입는 경우가 왕왕 있다. 행동반경이 좁다 보니 꾸미는 것이 유난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좁은 인간계 속의 평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신경 쓰는 사람이 있더라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적다.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세상 모든 부분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반드시 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나의 기호를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주부이고 엄마인 내게는 특별히 꾸밀만한 때와 장소가 드물다. 나는 대부분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돌본다. 사람을 자주 만나는 편도 아니라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 간만의 이벤트로 여겨질 만큼의 일상을 보낸다. 그렇다고 매일 수수하거나 편한 옷만 입어야 한다면 예쁜 옷을 입을 기회는 없지 않겠나. 3만 원짜리 티를 하나 사더라도 이왕이면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사고 싶다. 언제 올지 모르는 특별한 날을 위한 옷을 따로 사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나는 슈퍼를 가든, 도서관에 책을 대여하러 가든,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놀이터에 홀터넥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간들 아이와 놀아줄 때 문제가 되진 않을 테니까.


  처음부터 내가 나의 기호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20대 중반까지는 치마를 거의 입지 않았다. 나는 상체는 마르고 하체는 통통한 체형인데, 그 점을 꽤 신경 쓰는 편이었다. 사실은 치마를 좋아했는데도, 대학생활 내내 단 두벌의 치마가 있었고 그나마 자주 입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예쁠  나이에 주변 사람들 시선을 쓸데없이 신경 썼었다. 어느 날 나는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옷보다 옷을 입은 사람의 에티튜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통통한 사람도 짧은 치마를 입어도 밉지 않았다. 독특한 옷을 입었어도 당당한 사람에게는 개성이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입지 못한 많은 옷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20대 후반에 내 하체는 여전히 통통했지만 미니스커트를 마음껏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자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나는 그다지 튀고 싶지는 않지만, 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나의 기호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애매하게 튀는 사람의 소신이다.


  오늘 나는 결국 옷을 사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재킷이 있었지만 그다지 저렴하진 않아서 꾹 참았다. 그리고 쇼핑몰 5층에서 츄러스 두 봉지를 샀다. 옷은 못 사도 애들 하교 전에 간식은 사가는 아줌마의 짧은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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