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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Mar 30. 2022

반찬 만든 이야기

3

  화요일에는 아파트 장에서 야채를 산다. 대파, 양파, 알배기배추, 청경채, 숙주, 콩나물, 시금치, 버섯, 감자, 당근, 오이...  사는 것은 매번 비슷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비름나물을 샀다. 3~4월의 비름나물은 연해서 먹기 좋다. 비름나물을 데친 다음 고추장, 설탕, 참기름에 무쳐놓으면, 채소를 잘 안 먹는 남편도 잘 먹는다.


  수요일에는 장 봐온 채소들로 반찬을 한다. 달걀을 삶는 사이 숙주를 씻고, 다른 냄비에는 물을 끓였다. 삶아진 달걀은 찬물에 넣었다. 그사이 숙주를 데치기 시작하고 또 다른 냄비에는 간장과 설탕, 마늘을 넣고, 삶은 달걀을 까넣었다. 달걀을 까다 말고 데쳐진 숙주를 채반에 두고, 숙주가 있던 냄비는 다시 새 물을 부어 끓였다. 마지막 달걀까지 까넣은 냄비에는 불을 켰다. 새로 끓기 시작한 물에는 시금치를 넣고 살짝 데쳤다. 데쳐진 시금치를 채반에 건지고선, 또다시 새 물을 끓였다. 그 사이 시금치는 꼭 짜서 젓간장에 무치고, 콩나물도 무쳤다. 새 물이 끓기 시작해서 이번에는 비름나물을 넣어 데쳤다. 비름나물을 채반에 건진 후, 꼭 짜서 고추장에 무쳤다. 나물을 한바탕 만들고 나서 그동안 쓴 냄비와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그 다음에는 스탠볼에 찬물을 받아 오징어채를 넣어두고, 작은 사이즈의 궁중팬을 꺼내서 물과 고추장, 간장, 설탕을 넣고 한소끔 끓였다가 어묵을 조리듯이 볶았다. 양념이 졸아들어 참기름에 뒤적여서 반찬통에 넣었다. 팬을 살짝 헹구고서 다시 물과 고추장, 간장, 설탕을 넣고 한소끔 끓였다. 오징어채를 볶다가 양념이 졸아들어 마요네즈를 넣고서 뒤적였다. 멸치볶음이 남아있어서 오늘은 만들지 않았다. 달걀장조림은 계속 끓고 있었다. 불을 끄기 5분 전쯤에 버섯과 꽈리고추를 넣었다. 어제 남은 김치찌개에 콩나물을 가득 올려 바글바글 끓이고, 그 사이 설거지를 마치고서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종종 친구들과 푸념을 한다.

  "밥 대신 알약을 먹는 세상은 언제 올까?"

  "그러게 말이야. 그놈의 밥밥. 내가 사람인지 밥인지."

  "애들이 나한테 젤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배고파!"

  "아침 먹고나면 점심에 뭐할까, 점심 먹고나면 저녁에 뭐할까. 반찬 고민이 내 삶의 화두가 될 줄이야..."

  "맞아. 아줌마들 헤어질 때 인사가 오늘 저녁은 뭐야 라니까."


  밥 대신 알약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나였다. 그래놓고선 열심히 요리를 한다. 요즘 엄마들이 반찬을 사 먹는 경우가 많대서 몇 번 반찬가게에 가보았지만, 도토리묵이나 사들고 오기 일쑤다. 저 진미채 볶음은 10분이면 할 텐데, 저 가격이면 같은 반찬을 몇 배는 만들 수 있을 텐데, 저 어묵볶음은 내가 한 게 더 맛있을 텐데... 결국 마트에 들려 식재료만 사들고 온다. 귀찮다 귀찮다 중얼거리면서도 한 시간씩 쉼 없이 요리를 한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반찬을 타다닥 몰아서 해치우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빨리 끝내면 오래 쉴 수 있어라고 위안 삼는다.


  나는 왜인지 음식을 못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음식을 못하게 생긴 건 무얼까 의아하긴 하지만 아무튼 꽤 여러 번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런 평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간혹 누군가를 초대하는 날에는 요리를 잘한다며 맛있다고 극찬을 받는 것이다. 기대치가 낮아서 평가가 후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내 요리는 객관적으로도 나쁘진 않다. 제육볶음이나 김치전은 맛있다는 소리를 꽤 들었다.


  그런데 간혹 오해를 산다. '요리를 즐기시나 봐요'라든지 '집안일을 좋아하나 봐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나는 '감사해요.'라든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도 될 텐데 꼭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라고 대답하고 만다.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일을 참 좋아하시네요.'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왜 요리를 잘한다고 '집안일을 좋아하나 봐요.'라고 말하는 것일까? 귀찮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내 가족에게 먹여주고 싶긴 하다. 귀찮지만 사 먹기는 돈이 아깝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한다. 재미는 없지만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버리고 만다.라고 쓸데없이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집안일은 주부라는 직업으로서 행해지는 업무일 뿐이다. 물론 회사에서도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가정에서도 집안일을 즐기는 사람이 있긴 하다. 나는 '빨래를 좋아해'라든지 '나는 요리가 즐거워'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오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불만스럽진 않다. 집안일은 재미없고 귀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할 수 있다. 사랑과 책임감을 원동력 삼아 최선을 다하면 된다. 즐거움은 다른 데서 채우면 되니까.


  내일은 남겨둔 숙주에 배추와 우삼겹을 넣고선 숙주볶음을 해 먹을 생각이다. 한주먹 남겨둔 시금치와  청양고추를 넣고 칼칼한 된장국도 끓일 것이다. 요리는 재미없고 귀찮아도 먹는 것은 즐거우니까. 그래도 굳이 해명하자면 나는 집안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 '요리를 즐기시나 봐요?'라는 말에 굳이 해명하고 싶은 것일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유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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