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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Apr 01. 2022

한 밤의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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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하신 제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밤 9시 57분이었다. 둘째에게 읽어주던 책을 마저 읽어주고, 잠깐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고 보니 아무것도 없. 이건 무슨 일일까. 당황스러웠다. 제품을 구입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배송정보를 확인해봤더니 주소가 틀리게 기입되어 있었다. 3으로 끝나는 아파트동이 2로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보니 10시 45분. 요즘에는 택배기사님들이 택배를 집 앞에 두고 초인종은 누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바로 찾아오면 될 것 같았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앞동으로 달려가서 관리실 호출을 눌렀더니 응답이 없었다. 근처 경비실로 가서 사정을 설명드리고 1층 출입구를 열어주실 수 없는지 여쭤봤더니 안된다며 해당 집을 호출하라는 거다. 밤 11시에 그 집 앞에 배송이 잘못 갔다고 어떻게 호출을 하겠는가. 열어줄 수 없는 경비실의 입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싶었지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택배가 걱정되었다. 택배 내용물은 식품이었고, 잘못 배송된 집에 내일은 사람이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그 동 앞으로 돌아가서 마냥 기다리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분들인지 차량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누군가는 이곳에 오지 않을까? 5분... 10분... 15분... 한밤중에 남의 집 앞을 지키고 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20분쯤 되었을까 한 남자분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슬쩍 따라 들어갔다. 잘못 배송된 집 앞으로 가보니 내 이름이 적힌 스티로폼 박스가 있었다. 숫자 한 개 틀리게 입력해서 이 밤에 무슨 해프닝인가. 그렇지만 뭐 어떠한가. 어쨌든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실수에 매몰되지 않는 둔감함이 정신 건강에는 좋다. 다음부터는 배송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걸로. 남편에게 이 해프닝은 비밀로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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