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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Apr 05. 2022

봄 농사를 시작했다

6

  며칠 전부터 딸기를 키우고 싶다고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서, 하나로마트에 딸기 모종을 사러 갔다. 이미 꽃이 피고 딸기도 열리기 시작한 큰 모종은 6000원, 잎만 달린 조그만 모종은 2000원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모종을 사야만 한다고 했다. 자기들이 직접 물을 주면서 딸기가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모두 봐야 한다는 거다. 아이들이 화분에 직접 물을 주고 돌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모종을 포트 구입했다.


  집에 오자마자 화분 두 개에 딸기를 두 포트씩 심고, 두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막대를 꽃아 줬다. 같이 사온 청양고추 모종 세 포트를 화분 하나에 심고, 봉숭아 씨앗과 상추 씨앗도 각각 화분에 뿌렸다. 아이들은 옆에서 함께 하며 신나 했다.

  "엄마, 물은 언제 언제 줘?"

  "글쎄 식물 키우는 법 나온 책에 있을 걸?"

  "엄마 그 책이 안 보여. 어디 있지?"

  "그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어때?"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세 번 이래고, 어떤 사람은 이틀에 한 번 이래. 어떤 사람은 매일 줬다는데?"

  "원래 식물 물 주기는 며칠에 한 번이라고 딱 말하기 어려워. 집 안인지 밖인지, 건조한 지 습한지 환경에 따라 달라지거든. 평균 이틀에 한 번인 듯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그럼 월요일에 우리가 물 줘?"

  "그래."


  작년에는 팥과 콩을 키웠었다. 어느 날 큰 애가 학교 과학시간에 콩에 싹틔우기를 했다며 방법을 열심히 설명했다. 집에서도 해보자는데 마침 콩이 없어서 팥으로 해봤더니 싹이 텄다. 며칠 후 큰 애가 하굣길에 콩줄기 다섯 개를 들고 와서는 화분에 옮겨 심자고 하기에, 큰 화분을 사다가 콩과 팥을 심었다. 그 후 콩과 팥은 쑥쑥 자라 꽃이 피고 꼬투리도 열렸다. 콩과 팥을 키우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놀라운 경험이고 즐거운 놀이였다. 아이들은 매일 잎이 늘었는지 줄기가 길어졌는지 꽃이 피었는지 살펴보았었다.


  아이가 처음 콩에 싹틔우기를 하자고 했을 때, 사실은 귀찮았다. 그래도 결국은 접시에 화장솜을 깔고 팥을 올린 후, 푹 적셨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요청이 귀찮은 순간이 종종 있다. 오늘처럼 딸기를 키우겠다든지, 만들기를 할 테니 화장지 심지를 모아달라든지, 달걀말이를 만들어보고 싶다든지... 그래도 가능하면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남편은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피자를 만드는 나를 보며  '자기는 참 에너지가 많은 것 같아.'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은 없는 에너지도 쥐어짜 아이들과 활동한 다음 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소파에 널브러지는데 말이다. 나는 다만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딸기를 키워 볼 기회, 달갈말이를 만들어 볼 기회, 새로운 경험을 해 볼 기회를 주고 싶다. 해보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해봄으로써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오늘이 행복하리라 기대해본다. 그래서 오늘 발코니도 없는 거실에서 화분에다 또다시 봄 농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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