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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Apr 05. 2022

당일캠도 좋았다.

7

   집 근처 공원 내에 캠핑장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오늘 처음 와봤다. 2시 체크인에 밤에는 집에 돌아와야 해서, 남편은 본인이 예약하고서도 오전엔 고민이 되었는지 '그냥 가지 말까?' 물어보았다. 나는 '기분이라도 내보자.'라며 마저 준비를 했다.


  캠핑장에 도착한 남편은 타프를 설치하고, 아이들과 나는 테이블과 의자를 조립했다. 어제 자기들도 작업장갑을 사달래서 사줬더니, 장갑을 끼고선 의욕이 충만한지 열심이었다. 텐트는 가져오지 않고 팝업 그늘막만 던져두었더니, 우린 편하고 아이들은 캠핑 기분 내고 딱 좋았다.


  설치가 끝나자마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오늘은 돈마호크를 시즈닝해왔다. 큰 애가 작년부터 토마호크를 텔레비전에서 보고는 계속 노래를 하더니, 돈마호크에 속아 넘어갔다.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맛있으면 되지 싶은 반면에,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다음에는 토마호크를 사 와야겠다 싶었다. 집에서 십 분 거리 공원 안 캠핑장, 타프 아래에서 고기만 구워 먹었는데도 멀리 놀러 온 기분이었다. 밥을 일찍 먹어치운 애들은 그늘막 안에서 놀고, 우리는 맥주 한 잔에 고기를 먹고 있으니 그 잠깐의 여유가 행복했다.

  "이거 괜찮다. 당일캠 다닐만하다."

  "그러게. 제법 캠핑 느낌이 나네."

  "난 생각보다 좋은 거 같아. 텐트 안치고 짐도 적으니 편하고  고기만 구워 먹고도 캠핑 느낌 나고, 애들 즐거워하고."

  "확실히 일이 적은 건 편하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부담도 없고, 종종 오자."

  "취소 자리 나는지 틈틈이 봐야겠어."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나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간식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줄넘기를 했다. 남편이 돌아와서는 모두 함께 과일과 과자를 먹으며 보드게임을 했다. 요즘 우리 집 보드게임 인기 1순위는 '보난자'라는 게임이다. 카드를 계속 거래해야 해서 시끌시끌해지는 게임인데, 캠핑 갈 때 꼭 챙기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 라면도 끓여먹고, 짐들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자고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지만, 텐트를 안치고 조명이나 이불, 여벌 옷, 더 많은 음식 등등을 안 챙기니 당일캠이 꽤 편하게 느껴졌다. 당분간은 당일캠을 여러 번  시도해볼까 싶다.


  캠핑은 사실 귀찮은 취미이다. 텐트를 치고 테이블과 의자를 조립하고, 조명과 각종 필요한 용품을 세팅하는데 반나절... 돌아가는 날 정리하는데도 반나절이 걸린다. 사실 그 이전에 준비하고 다녀와서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더 든다. 집 밖이라 밥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더 불편하고, 화장실은 멀고 공용이다. 벌레도 흙도 많고 2박 3일쯤 지나면 몰골은 꾀죄죄해진다. 집에 돌아오면 매번 '아 우리집이 제일 좋다' 말하곤 한다. 그런데도 왜 캠핑을 가냐 하면, 즐겁기 때문이다. 분명히 힘들고 귀찮은데도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화로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이 행복하다. 집에서도 하던 보드게임인데 왠지 색다른 기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추억으로 쌓인다는 점이 좋다.


  나는 아홉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함께 지낸 시간이 짧은 편이지만, 추억들은 시간 대비 많이 있다. 아빠는 낚시를 한다 난을 캔다 하면서 우리를 데리고 다녔었다. 동생과 내가 모래를 파거나 조개껍질을 주우며 노는 동안 아빠는 큰 바위 위에서 낚시를 했다. 낚은 생선은 아빠가 직접 매운탕을 끓여줬는데 집에서는 안 먹는 그 빨간 국물이 이상하게 그 섬에서는 맛있었다. 난을 캐오면 저걸 아빠는 왜 캐는 건지 의아했다. 여름이면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했다. 종일 수영을 하다 딱딱한 텐트에 누우면 바닥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밤에 비가 오면 아빠는 밤새 텐트 옆을 삽으로 파서 물이 빠져나갈 고랑을 만들었다. 어느 여름인가는 태풍이 심해서 텐트를 걷고 근처 민박집을 급하게 구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은 힘들었을 텐데 우린 마냥 즐거웠다.


  내 아이들도 오늘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길. 매일매일 쌓이는 추억과 행복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길. 살다가 외롭거나 힘든 날에 달콤한 사탕처럼 꺼내먹을 수 있길.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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